한화생명을 바라보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시각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연초 S&P글로벌레이팅스를 시작으로 무디스(Moody’s)에 이어 최근 피치(Fitch)까지 ‘긍정적’ 등급 전망을 부여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내년에는 등급 상승까지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글로벌 신용도 개선에도 한국물(Korean Paper) 발행 움직임은 잠잠하다. 2022년 후순위채 발행 이후 외화채 시장을 찾지 않고 있다. 지금은 원화 조달 금리가 매력적이라고 여겨 한국물 발행을 미루고 있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의 분석이다.
◇피치, K-ICS 도입 후 자본건전성 강화 주목
4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화생명의 보험금 지급능력평가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A, 안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화생명의 등급 전망을 조정한 배경에는 강화된 자본건전성이 있다. 지난해부터 IFRS17 회계기준과 K-ICS(신지급여력비율) 제도가 새롭게 도입되면서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자본 비율 끌어올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말 킥스비율은 184%로 금융당국 최소기준인 100%를 넉넉히 상회했다. 다만 당국의 권고치는 150%다.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이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이다. CSM은 보험사가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것이다. IFRS17 도입에 따라 보험사의 핵심 장기 수익성 지표로 분류된다. 지난해 신계약 CSM은 2조5410억원으로 전년 1조6090억원 대비 60% 가까이 늘었다. 올해 상반기 신계약 CSM은 9965억원을 기록했다.
이미 피치에 앞서 올해 3월 S&P글로벌레이팅스도 등급 전망을 'A, 안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높였다. 무디스도 6월 'A2, 긍정적'으로 상향시켰다.
당시 무디스는 자회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통한 판매 역량에 주목했다. 한화생명은 2021년 국내 3대 대형 생명보험사 중 처음으로 상품 개발과 판매를 분리하는 이른바 제판분리를 단행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6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물론 설계사 수 기준 국내 최대 GA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5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이익 증가세가 가파르다.
◇우리은행 발행 계기 내년 보험사 등판 전망
이쯤 되면 외화채 발행을 결정할 법도 하지만 아직 잠잠하다. 한화생명의 한국물 복귀 시점에 IB업계의 관심이 큰 이유다. 한화생명은 자주 등판하지는 않지만 한 번 외화채를 발행할 때마다 조 단위 자금을 마련하는 곳이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한국물 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성 증권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2018년 한화생명은 10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적정성을 높였다. 그 후 2022년 1월 4년 만에 한국물 시장을 찾아 후순위채로 7억5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수요예측에서 총 11억달러 규모 주문이 확인돼 연 3.38% 금리로 자본 확충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를 끝으로 공모 한국물 시장을 떠났다. IB업계에선 원화 조달과 외화 조달 사이의 금리 격차가 원인이라고 평한다. 사실 한화생명은 킥스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성 증권 발행이 중요한 상황이다. 상반기 말 킥스비율 163%로 금융당국 권고치를 살짝 넘는 수준이다.
이 탓에 국내 시장에선 자본 확충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지난 7월 5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오는 11일에는 최대 6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추가 조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7월 발행 때 연 4.8% 금리로 5000억원을 마련했다. 다가올 수요예측에서도 희망 금리밴드를 4.2~4.7%로 제시했다.
하지만 글로벌본드를 택한다면 이자비용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앞서 한국물 시장에서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우리은행은 6% 초반에서 이자율이 정해졌다. 이는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이후 등장한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중 최저 수준이지만 한미간 금리 격차로 인해 원화 시장보다 이자가 높을 수밖에 없다.
IB업게에선 이달부터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한화생명을 비롯한 보험사의 한국물 등판 움직임도 시작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언제까지 원화 시장에서만 대규모 조달을 이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은행이 지난 7월 한국물 신종자본증권 포문을 열면서 국내 금융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가 시작된 후 국내 보험업계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 같다"며 "연말에 빠르게 복귀하기는 시간 여유가 없으니 내년 초부터 대거 등판이 기대된다"고 평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