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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비율이 아니라 이사회다

박기수 기자  2024-07-29 07:10:50
합병비율 문제로 올해 여름 재계가 뜨겁다. 합병비율 문제는 재계를 관통해 왔던 단골 손님같은 이슈다. 두 기업이 합병을 하는데 왜 한 쪽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냐, 혹은 낮게 평가했냐가 주 쟁점이다. 이번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두산로보틱스-두산에너빌리티 투자부문(밥캣) 합병 등이 그렇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2010년대 중반 삼성그룹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이었다. 작년 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도 같은 케이스다. 찾는 데 그리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널린게 합병비율로 인한 논란 사례다. 대부분 사례에서 제기된 비판의 지점은 공통적으로 '회사가 제시한 합병비율대로 가니 대주주만 유리하더라'였다. 최근 불거진 SK, 두산 사례도 이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가 제시하는 합병비율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제시한 합병비율에는 논리가 있고 그 논리에 일리도 있다.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니 법적으로 걸고 넘어질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가 100%의 주주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결정'을 내린다기 보다는 소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따졌기 때문이다. 70%의 일반 주주의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30%의 대주주의 이해 관계를 먼저 따졌다는 것이다. 그럼 그 '결정'은 누가 내릴까. 원칙적으로 이사회다.

"회장님(혹은 대표님), 이런 식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면 지주사(혹은 회장님)의 지배력은 커지겠지만 우리 기업 대다수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희석될 겁니다. 원칙 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자칫 시스템을 이용한 꼼수로 비판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최선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논란이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회사에서 제시한 이런 합병비율(혹은 합병안)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사회가 재벌 기업집단에 몇이나 있을까. 이사회의 근간이 오너이자 대주주인 K-이사회에서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론 머스크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려고 하자 화난 테슬라 소액주주가 이사회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는 시대에서 말이다.

동원, SGC에너지 등이 그랬던 것처럼 비판의 목소리가 강해지면 SK, 두산도 합병비율을 고쳐 잡을 수는 있다. 다만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면 같은 합병비율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 기업 경영의 결정을 내리는 주체인 '이사회'를 바라봐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K-밸류업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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