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SK그룹이 체질 변화를 선언했다. 배터리 사업 육성과 환경, 소재, 수소 등 신사업 발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자금 유출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결과다. 리밸런싱 선언을 SK그룹의 '후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진통에 가깝다. THE CFO는 SK그룹의 성장 전략과 핵심 계열사들의 재무구조를 점검한다. 나아가 2024년 현재 SK그룹이 직면한 리스크의 실체와 크기를 객관적으로 진단한다.
SK그룹이 재계 2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주 요인은 SK그룹의 성장 전략이자 고유 운영방식인 '따로 또 같이' 덕이었다. 각 계열사가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책임경영을 실천하되 상호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협의회를 운영하고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참여한다는 철학이다.
다만 '따로 또 같이'는 역으로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론이 나오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SK그룹의 굵직한 계열사들은 이제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회사다. 2024년 현재 SK이노베이션을 '정유사'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필름 사업이 모태였던 SKC도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회사다. 정유·화학·전자·통신·건설 등 색채가 뚜렷했던 회사들이 신사업 진출에 나서면서 색깔이 동화됐고 그룹 내 '교집합', 다시 말하면 중복 사업이 많아졌다.
그룹 내 다수의 계열사들의 사업 영역이 겹치는 이런 현상이 마냥 부정적인 상황일까. 사실 중복 사업은 최근에서야 문제가 됐다. SK그룹이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반도체와 이차전지, 그린, 바이오 등 핵심 사업 영역이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다. 한 곳으로 힘을 모으면 시너지 효과를 비롯해 사업의 집중도가 올라갈 수 있는데 왜 각개전투하며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화학사업의 경우 SK이노베이션의 △SK인천석유화학(파라자일렌) △SK지오센트릭(에틸렌 계열)과 SKC의 △SK피아이씨글로벌(프로필렌옥사이드 등) SK에코플랜트의 △디와이인더스 △디와이폴리머 등이 영위한다. 최창원 의장의 SK디스커버리 계열까지 범위를 늘리면 SK케미칼(코폴리에스터)과 △SK어드밴스드(LPG 기반 프로필렌) △APOC(프로필렌) 등도 화학사업을 한다.
이차전지 관련 사업 역시 지주사와 계열사들에 밸류체인이 퍼져 있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의 △SK온(이차전지 셀)이 대표 기업이다. 또 이차전지 소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분리막)도 SK이노베이션 밑에 있다. 다만 같은 이차전지 소재 사업인 동박과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영위하는 △SKCFT홀딩스(SK넥실리스)와 △넥시온은 SKC의 자회사다. △SK머티리얼즈그룹포틴(음극재)과 △SK시그넷(전기차 충전)도 이차전지 관련 사업인데 이는 SK의 직접 자회사다.
반도체 사업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사인 △SK하이닉스가 중심이다.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 계열이다. 반면 △사피온(비메모리)은 SK텔레콤이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C는 반도체 '소재' 사업을 담당한다. 자회사 △SK엔펄스 △앱솔릭스 △ISC 모두 반도체 관련 소재 혹은 장비 사업자다. 지주사 SK의 자회사인 △SK실트론(웨이퍼) △SK머티리얼즈CIC(반도체용 가스) 등도 반도체 관련 밸류체인이다. 사업 영역이 반도체 업종 내에서도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회사가 아닌 여러 계열사에 분포돼 있다.
이 밖에 에너지·발전 사업자인 SK E&S 외에도 SK에코플랜트가 자회사를 통해 발전업을 하고 있다.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자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이외 최창원 의장의 SK디스커버리 계열에 있는 SK가스의 자회사 △울산지피에스 △빛고을에코에너지 △고성그린파워도 발전업 계열사로 중복된다.
바이오 사업은 SK와 SK디스커버리 계열이 중복된다. SK에서는 △SK팜테코가 유전자치료제(CGT) CDMO인데 SK케미칼의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의 사업 영역과 많이 중복된다. 이외 SK의 자회사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 바이오 업체로 분류된다.
사업 재편으로 비슷한 영역이 하나의 계열사로 뭉치는 그림은 쉽게 그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큼지막한 사업이 법인 간 이동할 경우 비용이 발생하고 이는 그룹 차원에서도 큰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또 SK그룹이 지금까지 성장해 온 따로 또 같이 전략의 큰 틀에서 봤을 때도 지배구조 대격변이 일어날 여지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업계의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