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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진화의 성장통

'인큐베이터' 지주사, CIC 체제 중간성적표

⑧반도체 소재사업 육성·지주사 시총 제고 '시기상조'…리밸런싱 '광풍' 영향 주목

이민호 기자  2024-06-28 07: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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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체질 변화를 선언했다. 배터리 사업 육성과 환경, 소재, 수소 등 신사업 발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자금 유출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결과다. 리밸런싱 선언을 SK그룹의 '후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진통에 가깝다. THE CFO는 SK그룹의 성장 전략과 핵심 계열사들의 재무구조를 점검한다. 나아가 2024년 현재 SK그룹이 직면한 리스크의 실체와 크기를 객관적으로 진단한다.
SK그룹 지주사 SK는 2021년 반도체 소재사업을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재편했다. SK의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소재사업 육성을 기대한 결정이었다. 반도체 업황 부진이라는 거시환경 변화와 SK온 자금 소요라는 그룹 차원의 과제가 겹치면서 이 결정에 대한 결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SK그룹이 리밸런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머티리얼즈 CIC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SK 머티리얼즈 CIC의 전신은 SK가 2016년 2월 OCI로부터 경영권 지분 49.1%를 4703억원에 인수한 OCI머티리얼즈다. SK그룹은 2012년 2월 지분 21.05%를 3조3747억원(신디케이트론 2조5000억원 포함)에 사들인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사업에 그룹의 미래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받쳐줄 반도체 소재사업의 육성이 절실했다.

출처: SK 머티리얼즈 CIC

SK그룹은 SK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사업을 강화하고자 했다. SK머티리얼즈 경영권 인수 직후 SKC 자회사였던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옛 SKC에어가스)를 자회사로 붙이고 반도체용 세정가스와 특수가스에 대한 증설을 결정했다. 일본 레조낙(옛 쇼와덴코)과 합작해 반도체용 식각가스를 생산하는 SK레조낙(옛 SK쇼와덴코)을, 일본 트리케미컬과 합작해 반도체용 전구체(프리커서)를 생산하는 SK트리켐을 잇따라 출범시키기도 했다.

SK머티리얼즈가 SK의 CIC 체제로 변화한 것은 2021년 12월이다. SK머티리얼즈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SK스페셜티를 신설하고 지주부문은 존속해 SK에 흡수합병됐다. 당시 지배구조 재편으로 SK스페셜티를 포함한 SK그룹 반도체 소재사업 관련 계열사들이 모두 SK 자회사로 편제됐다. SK는 머티리얼즈 CIC 체제 도입 이래로 경영(올해 1분기말 기준 김양택 사장)과 재무(성은경 BM혁신본부장)를 SK 지주 조직과 구분해 독립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SK가 머티리얼즈를 CIC 체제로 변경한 이유 중 하나는 SK 품에서 반도체 소재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은 이미 막강한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자체 성장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반도체 소재사업의 성장에는 SK의 현금창출력을 붙여주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봤다.

지주사가 핵심 사업부문을 인큐베이팅하는 형태다. SK는 C&C를 통해 자체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고 SK텔레콤과 SK E&S를 포함한 자회사로부터 배당금과 상표권 사용료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M&A를 통한 외형 확장도 SK의 현금창출력을 이용하면 SK머티리얼즈 자체 이익에 의존하는 것보다 크게 용이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SK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2021년 SK는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개 투자센터를 바탕으로 전문가치투자자를 표방하며 2025년까지 시가총액 140조원을 달성한다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내세우고 있었다. 특히 반도체 소재사업에서 2025년까지 2조7000억원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달성할 계획을 발표한 만큼 반도체 소재사업을 내재화하면 SK 덩치를 키울 수 있어 시가총액 증가에도 긍정적일 것으로 봤다.

출처: SK 2023.4분기 실적발표 자료

27일 종가 기준 SK의 시가총액은 11조원 수준이고 SK가 지난 3월 실적발표 자료에서 공개한 머티리얼즈 CIC의 지난해 EBITDA는 3600억원이었다. 그럼에도 SK가 반도체 소재사업을 CIC 체제로 재편한 성적표를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감소했던 SK하이닉스의 이익창출력이 올해 들어 회복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SK 머티리얼즈 CIC의 실적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여기에 SK온에 대한 자금 지원이 그룹 전반의 과제로 겹치면서 반도체 소재사업에서의 추가적인 M&A가 주춤했던 것도 있다.

28일부터 열리는 SK그룹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SK 머티리얼즈 CIC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열려있다. 머티리얼즈 CIC가 이익창출력을 비교적 양호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만큼 SK가 각 자회사를 지원하는 카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 소요에 직면한 SK에코플랜트에 SK의 일부 산업용 가스 자회사를 붙이는 방안이 시장에서 흘러나온 것도 이런 이유다.

SK그룹이 리밸런싱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만큼 앞서 기대한 SK 시가총액 증대나 반도체 소재사업 확장에 효과를 못 봤다고 판단할 경우 머티리얼즈 CIC에 대한 대대적인 교통정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터리 소재사업 등 소재사업이 중심인 SKC나 반도체 사업과 연관이 높은 SK스퀘어에 머티리얼즈 CIC를 붙여주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SKC나 SK스퀘어 모두 최근 이익창출력에 고민이 깊어 머티리얼즈 CIC를 확보한다면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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