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공기업'이라는 별칭이 붙은 한국전력공사는 그동안 적자가 이어지고 재무적 위험이 커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올해 2월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수행하는 기획본부장으로 오흥복 상임이사가 부임했다.
취임 100일을 앞둔 오 본부장이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경영 정상화 촉진'이다. 앞서 수립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맞춰 올해 8조원 규모의 자구대책을 이행해야 한다. 자본 확충, 비용 긴축, 사업시기 조정, 자산 효율화 등을 병행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획·예산' 경험 겸비, 직무대행 거쳐 공식부임 한국전력은 2021년을 기점으로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석탄 등 에너지 시세가 급등해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매입하는 단가도 대폭 올랐다. 반면 민간에 전기를 판매하는 가격(전력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연됐다. 별도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이 2021년 이래 3년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본업에서 현금 창출이 여의치 않게 되자 외부에서 유동성을 확보해 운영자금을 충당했다. 이러한 조달 행보는 차입금이 빠르게 불어나는 배경이었다. 한국전력의 전체 차입금은 지난해 말 90조3205억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 말 32조522억원과 견줘보면 3년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는 28.3%에서 65.1%로 36.8%포인트, 부채비율 역시 112.1%에서 644.2%로 532.1%포인트 상승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전력의 경영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쏟는 인물이 오흥복 CFO다. 1965년생인 오 본부장은 1987년 입사한 이래 37년째 한국전력에 몸담았다. 비서실장, 남서울본부장, 인사처장 등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말 전임 CFO인 서근배 미래전략기획본부장이 해외원전사업본부장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공석이 된 기획본부장의 소관 사무를 오 본부장이 임시로 맡았다. 과거 예산실장, 정책조정실장 등 재무·기획 영역의 직책을 수행한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오 본부장은 직무대행을 거쳐 올해 2월 21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기획본부장 겸 상임이사로 정식 선임됐다.
오 CFO가 총괄하는 기획본부 산하에는 △기획처 △전력시장처 △요금전략처 △재무처 등 4개 조직이 편제돼 있다. 기획처는 예산 수립과 정책 조정 업무에 방점을 찍었다. 전력시장처는 계약거래와 수요입찰 등을 관장하고 요금전략처는 요금 책정 기준·제도를 설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재무처는 금융, 결산, 세무, 내부회계 관리, 부동산 기획 등의 분야에 주력하는 기구다.
◇'토지 재평가' 7조 자본확충, 자회사 지분매각 추진 오 CFO는 지난해 8월에 수립된 '5개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이행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2027년까지 15조4637억원 규모의 자구대책을 실행하는 내용이 골자다. 계획 종료 연도까지 부채비율을 459%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회사채 발행잔액을 자본금과 적립금 합산액의 2배 이하로 관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다.
특히 올해가 계획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부각됐다. 5년간 실행하는 전체 자구노력 금액의 54.7%인 8조4620억원이 2024년에 쏠렸기 때문이다. 변전소·전력구 등의 공사 시기를 미루는 방식으로 4878억원의 지출을 억제하고 사업비·경상경비 등 3211억원의 비용 절감을 염두에 뒀다.
서울 마장동 자재센터 부지 등 보유한 자산을 다수 매각해 최소 3885억원을 확보하는 밑그림도 그렸다. 표준시설부담금을 추가로 조정하는 등 영업제도를 고쳐 2239억원의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도 담겼다. 자회사 한전KDN을 상장시킨 뒤 한국전력이 보유한 지분 20%를 처분해 1300억원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도 수립됐다.
특히 연내 7조407억원의 자본을 확충하는 구상이 단연 돋보인다. 자본 확충의 구체적 방안은 보유한 토지를 재평가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재평가를 계기로 발생하는 자산가치 차액이 기타포괄손익누계액에 반영되는데 총자본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현금이 유입되지는 않더라도 자기자본이 두터워지는 만큼 부채비율 등 레버리지 지표 개선에 기여할 거라는 분석과 맞물렸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토지 취득 시점 당시 가격과 현재 가치의 괴리가 커진 점을 감안하면 자산을 다시 평가할 필요성이 부각됐다"며 "올해 초 토지 재평가 방안을 둘러싼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나 아직 결과 회신을 받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구대책 수립·이행과 맞물려 전기 판매를 둘러싼 수익 기반을 견고하게 다지는 과제를 유념하고 있다"며 "실적 적자가 발생할 여지를 완전히 해소하고 경영 정상화를 촉진하는 사안은 기획본부를 넘어 전사 차원의 중대한 과업"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