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한국전력이 어려울 때마다 등장하는 게 '민영화'다. 한전이 독점하는 전력판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한전의 반복되는 적자구조가 해결된다는 주장이다. 적자구조의 원인이 방만 경영에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과연 그럴까.
일단 한전 사업구조를 살펴보자. 한전은 발전 자회사들이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를 통해 매입해 기업과 가계에 판매한다. 유통사나 다름없는 구조로 복잡하지 않다. 이익 내는 방법도 간단하다. 전기 판매가격이 전기 매입가격보다 높으면 된다. 판매가격이 높아질수록 이익률과 규모는 확대된다.
손실은 반대일 경우 발생한다. 전기 매입가격이 판매가격보다 클 때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결코 이익을 낼 수 없다. 오히려 팔수록 손실이 커진다. 역대 최대 매출인 69조원을 기록한 2022년에 한전은 역대 최악인 40조원의 순손실을 냈다. 당시 전기 매입가격은 kWh당 155원, 판매가격은 107원이었다.
따라서 한전 적자구조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전기 판매가격을 올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복잡해진다. 전기를 독점 판매하는 한전에 가격결정권이 없다. 생사여탈권인 가격결정권은 지분 51.1%를 보유한 최대주주 정부에 있다.
가격결정 순서를 따라가보자. 먼저 한전 이사회는 원하는 전기 판매가격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인가 신청한다. 산자부 장관은 이를 기재부 장관과 협의한 뒤, 산자부 소속 전기위원회와 최종 심의해 인가한다. 전기위원장과 위원은 모두 산자부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사회 구성 절차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각 단계마다 예외없이 정부 의중이 반영되는 구조다. 그런데 어느 정부가 유권자들 반대가 많은 전기판매 가격 인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지지율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가구당 실질 가처분소득이 떨어지고 총선이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
유권자들을 탓하는 것도 어색하다. 한전은 엄연히 상장사로 이익은 정부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한전 주식을 보유한 유권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유권자에게 한전 실적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고물가로 괴로운 때 낮은 전기요금을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한전 이익이 결국 우리 공동체 이익이라고 설득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외면하고 한전만 비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기업분석 전문가는 "가격정책 외에 회사가 할 수 있는 건 의외로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전기 수요가 증가하고 손실이 수십조원에 달하는데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한전에 과연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잘못된 비판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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