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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는 누가 뽑아야 할까

이민호 기자  2024-04-12 07:48:28
사외이사 구성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통상, 산업·기술, 법·규제, 재무·투자 등 사외이사 전문분야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이지만 기업마다 필요로 하는 사외이사 전문분야가 다른 것도 현실이다.

취재차 모 기업에 사외이사 구성이 국세청·산업통상자원부 관료와 지방법원 판사 출신 등 법·규제 전문가에 쏠린 이유를 물었다. "핵심 사업이 국가 기간산업과 연관돼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경우 사외이사 구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추가 판단이 필요하다.

이 기업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가 추천한 결과"라는 취지의 답변도 보내왔다. 기업은 사추위를 앞세워 사외이사 구성에 정당성을 얻는다. 사외이사 구성을 평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적합성은 평가할 수 있다.

상법은 별도 기준 자산총계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사추위를 설치하고 총위원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사외이사가 과반이기만 하면 사내이사의 개입 여부는 상관없다는 점이다. 특히 이 사내이사가 기업 오너라면 사추위의 독립성과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적합성에 의문이 커진다. 오너가 위원으로 개입한다면 사외이사 과반 조건도 퇴색되는 탓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고려한다면 상법 기준은 다소 허술한 면이 있다. 적어도 사외이사는 사외이사가 추천하는 게 맞다. 그러려면 사추위 위원 전원이 사외이사여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내 기업이 사추위에 사내이사가 끼어있다.

SK는 사추위 역할의 인사위원회에 오너이자 사내이사인 최태원 회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LG는 사추위에 사내이사인 권봉석 부회장을 포함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오너이자 사내이사인 구광모 회장의 최측근이다. 현대차도 사추위에 오너이자 사내이사인 정의선 회장과 사내이사인 장재훈 사장을 포함하고 있다.

사추위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사추위에 앞서 사외이사후보추천자문단을 가동하거나 일반주주로부터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는 등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하지만 사내이사가 사추위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면 이런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상법을 당장 개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개정이 필요한지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사업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위원 구성을 밝히도록 하는 등 사추위 독립성을 제고하는 간접적인 노력이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앞세운 기관투자자도 사취위 독립성 확보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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