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계열 분리 신호탄을 쐈다. 지난 2월 그룹 분할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오너 3세 시대의 출발을 공식화했다. 금번 분기 중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해당 안건을 검토하고 하반기 2개 지주사 체제를 가동한다는 목표다.
오너 3세, 독립 경영의 시작은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된 시나리오의 결과물이다. 그룹이 2개로 쪼개지기 위한 초석 다지기 작업이 내부적으로 꼼꼼히 진행돼 왔다. 승계, 지분 정리 등 3세 경영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력 마련 및 구심점 확보 작업이 순조롭게 전개돼 왔다.
그룹 내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오너 3세 3형제가 100% 주주인 회사들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분을 3형제 중 한 명에게 대거 몰아주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법인들은 모두 3형제가 출생한 시점과 맞물려 신규 설립됐다. 조석래 전 회장이 오롯이 세 자녀만을 주주로 구성한 3개 법인을 세워 후일을 도모하려 한 그림이다. 구체적으로 '동륭실업', '신동진',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등이다.
이 법인들은 당초 3형제를 대상으로 지분이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대체적으로 첫째인 조현준 효성 회장의 몫이 많은 편이었지만 각각 둘째와 셋째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과의 지분 차가 극단적이지 않았다. 일례로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의 경우 1990년대 당시 지분이 3형제 차례로 50%, 33%, 16%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나머지 두 곳의 법인도 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분 구성엔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고 3개 법인을 중심으로 교통 정리도 본격화됐다.
구체적으로 조석래 전 회장이 아들 한 명씩에게 하나의 법인을 쥐여줬다. 조현준 회장에겐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조현문 전 효성 부회장에겐 동륭실업, 막내 조현상 부회장에겐 신동진을 줬다. 모두 2005년의 일이었다. 이 시기 세 법인의 지분 구성이 일제히 80%, 10%, 10%로 변경됐다. 삼형제 개개인이 각자 하나의 거점, 즉 온전한 개인회사를 마련하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들 모두 3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들 법인은 자금 마련 거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모두 공통적으로 부동산 임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각각의 법인이 건물, 부지 등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임대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타 사업 대비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이들 법인은 효성 그룹 계열사로부터 주요하게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그룹 계열 법인들이 이들 법인이 보유한 건물에 세 들어 살며 임차료를 지급하고 있다. 다만 둘째 조현문 전 효성 부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동륭실업은 현재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 보유하고 있던 서울 종로구 효제동 소재 부지를 처분한 상태다.
나머지 두 형제는 각각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에 핵심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신동진을 통해 보유한 반포빌딩엔 현재 그룹 계열사인 '아승오토모티브그룹', '에프엠케이', '효성화학' 등이 입주해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의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보유 청담빌딩엔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이 위치해 있다.
결과적으로 이 법인들은 가업 승계 과정에서 높은 쓰임새를 지닌다. 부동산 임대 수익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확보, 주식 상속세 충당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아버지 조석래 전 회장의 그룹 지분 상속 이슈를 안고 있다. 전 계열사에 걸쳐 지배력을 행사했던 조석래 전 회장의 지분을 후대가 물려받는 과정에서 몇천억원대의 상속세가 매겨질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이다. 이같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문제에 대비할 수 있게 최소 20년 전부터 세 아들에게 각자의 재원 마련용 비히클을 쥐여준 셈이다.
후대에 이 법인들은 비슷하게 재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승계 자금 밑천으로 활용할 수 있게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형태다. 다만 일부 처분할 여지도 있다. 그대로 물려줄 경우 마찬가지로 상속세 부담이 가중되는 탓이다. 반은 정리하고 반은 상속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통해 4세들의 자금 부담을 낮춰주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