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식을 모르는 사람도 '에코프로'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양극재가 시장을 지배했던 때가 있었다. 광풍이 한 차례 분 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양극재 기업들의 주가도 한 풀 꺾였다.
주가가 빠진 것은 양극재 기업의 미래 기대수익률이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년은 리튬 등 양극재의 원료 가격이 2년 전 대비 '폭락'하면서 양극재 업체들이 대거 재고평가손실을 입은 해였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같은 양극재 업체라도 기록한 평가손실액이 모두 다르다.
국내 양극재 5사로는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LG화학(첨단소재 사업), 코스모신소재가 꼽힌다. 가장 많은 평가손실을 기록한 곳은 엘앤에프(2382억원). 에코프로비엠(1653억원)도 못지 않은 금액의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코스모신소재(16억원)와 LG화학(630억원)은 오히려 평가이익을 기록했다.
보유한 재고의 절대량이 많으니 손실의 규모도 큰 것도 있지만 전체 재고 중 손실의 '비중'을 봐도 엘앤에프가 압도적이다. 재고 장부가액 대비 엘앤에프가 충당금으로 잡은 비중은 약 22%, 에코프로비엠도 16%를 기록했다. 평가손실을 낼 만큼 악성 재고가 된 비중이 작년 매우 컸던 셈이다. 코스모신소재는 0.7%로 가장 적었다.
물론 엘앤에프는 작년 새로운 CFO가 부임했던 만큼 빅 배스를 단행해 손실을 대거 떨어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숫자로 나온 결과물만 보면 CFO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재고 관리가 작년 양극재 기업의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요소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수주량과 경영 전략에 따라 특정 시점에 재고를 특별히 많이 쌓을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만의 재고를 유지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양극재 1·2위 업체인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는 리튬 가격이 비쌌던 2년 전 원재료 매입으로 엄청나게 재고를 쌓았지만 작년 예기치 못한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수천억원의 평가손실을 쌓았다. 이는 곧 매출원가로 반영돼 자기자본이익률(ROE) 하락에 직결됐다. 주가 하락은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럼 코스모신소재는 어떻게 평가'손실'이 아닌 '이익'을 거뒀을까? 코스모신소재가 원재료를 쌓았던 시점은 2년 전이 아닌 작년이었다. 원재료 매입가와 판가의 차이가 크지 않으니 평가손실을 낼 일이 없었다. CFO의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수주량에 따라 재고를 쌓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숫자의 차이는 구매 등 재무부서의 판단에서 갈렸다.
컨퍼런스 콜에서 LG화학은 타이트한 원재료 수급과 재고 관리를 통해 평가손실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결과는 690억원의 평가이익이었다. 물론 LG화학은 여러 사업 부문이 섞여있는 숫자라 양극재 사업의 성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각 사 CFO들의 재고 관리 전략이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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