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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펀딩 생태계 점검

대형 연기금·공제회, '사모대출'서 기회 엿본다

②에쿼티 출자 난이도 높아, 리스크 낮고 안정적인 고금리 이자율 상품 관심

김지효 기자  2024-03-18 14:57:14

편집자주

수년간 이어진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드리운 그늘도 짙어졌다. 돈줄을 쥐고 있는 유한책임출자자(LP)는 잔뜩 움추러들었다. 펀딩 난이도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무한책임사원(GP)도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더벨은 찬바람이 거세진 펀드레이징 시장의 생태계를 점검해본다
자금시장에 부는 거센 찬바람 속에서도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 연기금, 공제회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건 ‘사모대출((Private Debt) 시장이다. 사모대출은 사모채권, 사모신용 등으로 혼용되어 불리며 은행처럼 기업에 자금을 대출하거나 사모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간 주요 연기금·공제회가 기업의 경영권이나 지분을 취득해 수익을 냈다면 이제는 은행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줌으로써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고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에쿼티 투자와 비교해 리크스는 낮으면서도 정해진 기간 안에 일정 수익 이상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설명이다.

◇국내 대형 연기금·공제회, 사모대출투자 일찌감치 관심

가장 먼저 크레딧 출자사업에 나선 건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다. 우본은 우체국예금과 우체국보험을 통해 약 143조의 자금을 굴리고 있는 국내 대형 LP 중 한 곳으로 이미 지난해부터 메자닌 투자를 대상으로 하는 출자사업에 나섰다.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원금 보호 옵션이 마련된 메자닌 형태로 투자하는 GP를 대상으로 1000억~1500억원 규모의 출자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열린 메자닌 출자사업 절차는 현재 진행중이다.

기금 규모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LP 국민연금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국민연금은 올해 사모대출투자팀을 신설했다. 3~4년 전부터 사모대출투자를 진행해왔지만 최근 사모대출 등 크레딧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별도의 팀을 꾸렸다. 사모대출을 대상으로 별도의 벤치마크를 이미 수 년 전 마련한 국민연금이 별도의 팀까지 꾸리면서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모대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26조원을 굴리고 있는 사학연금도 올해 사모대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전체 투자자산 가운데 에쿼티 투자 비중이 85%에 이르지만 중장기적으로 대출 비중을 4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펀드, 블라인드펀드 출자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중이다.

이에 해마다 하반기에 진행해왔던 에쿼티 투자 중심의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 실시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기조가 이어진다면 에쿼티 투자 대신 크레딧 투자를 대상으로 한 출자사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학연금은 기존에 약정한 투자금 집행률이 저조한 만큼 이를 감안해 올해 하반기 출자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교직원공제회와 행정공제회 등 국내 대형 공제회도 당분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통해 사모대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행정공제회는 신한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을 통해 해외의 신규 크레딧 투자 건들을 발굴하면서 사모대출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시장 상황 어려워도 에쿼티 출자도 지속 “빈티지 관리”

녹록치 않은 시장 상황에도 올해 에쿼티 출자사업 규모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운 곳도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PEF부문 출자 규모를 늘릴 전망이다. 이를 위해 현재 PEF운용사를 대상으로 사전 수요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예상되는 규모는 1조원으로 지난해 PEF 부문의 출자규모 8000억원보다 30%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기존 위탁운용사 가운데 펀드 수익률(IRR)이 12%를 넘는 우수운용사를 대상으로 수시 출자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M&A시장이 얼어붙은 탓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수 운용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수시 출자 대신 정시 출자사업에 출자금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시장에 자금이 마른 상황을 고려해 대형 펀드 출자 이외에도 미들캡에 대한 출자도 늘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공제회는 고금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모대출에도 관심이 높지만 에쿼티 대상 출자사업도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투자상황이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빈티지 관리 차원에서 출자사업을 기존대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군인공제회는 그동안 블라인드와 프로젝트펀드에 투자를 늘리면서 대체투자를 강화해왔다. 통상적으로 해마다 하반기에 PE와 VC를 대상으로 출자사업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말 진행된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000억원을 배정하며 대체투자 확대 기조를 이어갔다.

군인공제회의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규모는 16조9000억원으로 대체투자가 투자자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체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1% 수준이다. 금액으로는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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