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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삼성 전자부문 계열사들의 올해 임원인사도 40대 부사장 등 젊은 리더 발탁과 세대교체에 맞춰져 있다. 다만 재무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경영지원실장들은 인사 변동의 무풍지대다. 상당수 CFO들이 아직 임기가 남아있는데다 아직 경기가 풀리지 않은 와중에 말을 바꿔 타지 않는 삼성 특유의 인사 코드가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하면서 부사장 51명, 상무 77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4명 등 총 143명을 승진시켰다. 삼성디스플레이도 부사장 10명, 상무 15명, 기술전문가인 펠로우와 마스터 각각 1명 규모로 2024년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삼성SDI는 부사장 승진 6명, 상무 승진 15명 등이다. 삼성전기는 부사장 2명과 상무 6명 등 총 8명이, 삼성SDS는 부사장 2명과 상무 7명이 승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성장 잠재력을 갖춘 30대 상무, 40대 부사장 등 젊은 리더들이 배출됐다.
다만 경영지원실 등 재무라인은 인사 변동의 무풍지대였다. 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과 김홍경 DS부문 경영지원실장(부사장) 등 CFO 라인은 그대로 유임됐다. 이병준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물론 김성진 삼성전기 경영지원실장(부사장)과 안정태 삼성SDS 경영지원실장(부사장)도 마찬가지다.
내년 3월 임기만료인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부사장)마저 유임됐다. 이에 따라 삼성 전자부문 계열사들의 CFO는 모두 자리를 보전했다. IT기기 시장 불황과 반도체 불경기로 전반적인 경영실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무 총괄임원들은 변동이 없었다.
우선 김종성 삼성SDI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선임 및 연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사들이라 딱히 변동 요인이 적었다. 또 이번 임원인사는 대대적인 변화보다 경영 안정에 무게가 실렸다. LG나 한화, 신세계 등에서 CFO들이 대대적으로 변동한 것에 비춰보면 삼성은 고요한 편이다.
실적 부진의 원인이 업황 악화의 탓이 큰 데다 턴어라운드 흐름을 보이는 만큼 일단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더 지켜보자는 데 무게가 실렸다. 재무전략 이슈라기보다 경기 불안을 뚫는 데 중점을 두고 기술과 마케팅 등의 임원 승진이 쏠렸다.
실제로 교체설까지 돌았던 한종희·경계현 대표이사 체제는 물론 정현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팀장(부회장)과 대표이사 선임 가능성이 제기됐던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사장) 등은 모두 유임됐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등 주요 전자 계열사 대표이사들도 마찬가지다.
CFO도 이 같은 기조에 따라 전부 유임됐다. 아직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남은 마당에 조직에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