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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삼성, 뉴거버넌스 길을 묻다

소유와 경영 사이, '한국형 전문경영인 체제' 밑그림은

①'주인 없는 회사' 갈림길에 선 삼성, 새로운 경영 시스템 구축 방향은

김혜란 기자  2023-12-12 13:57:49

편집자주

모든 것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시작했다. 사법리스크가 드리우자 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4세경영'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장 선언 이후 4년여가 지났다. 삼성의 '뉴거버넌스' 청사진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삼성은 창업 이후 지켜온 기존 오너 경영을 대체할 '한국형 전문경영인 체제'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을까, 다른 거버넌스 개편 과제는 없을까. 삼성이, 이 회장이 3세경영 대에 풀어야 할 과업이다.삼성 안팎의 전문가들과 함께 삼성의 거버넌스 방향을 고민해 본다.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이 뿌리인 삼성 그룹은 내년 1월이면 55주년을 맞는다. 55년간 삼성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병철 창업회장에서 이건희 전 회장으로 승계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두 선대 회장은 '반도체 신화'를 세웠고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 역시 부각goT다. '오너 경영의 신화' 역시 빛나던 시대다.

하지만 '3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을 받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제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앞으로 2심·3심 재판까지 이어진다면 이 회장은 최소 3년은 더 재판에 매달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4세경영 승계 포기는 이런 경영권 승계 논란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제시한 카드였다. 이 회장은 대물림 경영을 포기한 만큼 확고한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선대 회장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과업을 해내야 한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창조하는 일은 그만큼 무척 어렵다. 삼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은 훨씬 높고 엄격하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의 수장인 이 회장은 '뉴거버넌스' 과제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오너 경영 체제, 막 내릴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준법감시위원회가 가장 잘한 업적은 이 회장이 선언한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이끌어낸 것입니다."(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김우진 위원)

"(2020년 4세경영 승계 포기 선언 이후)여러가지 지속가능한 경영시스템에 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삼성 내부관계자)

삼성 계열사들의 준법감시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는 2020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외부 감시기구 설치를 주문하자 이에 맞춰 이 회장이 출범시킨 조직이다. 준감위 설치는 삼성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준감위가 대물림 경영 포기 선언을 이끌어낸 것을 핵심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선언 이후 이 회장이 어떤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직 없다.

일각에서는 실제로 삼성의 오너 체제가 막을 내릴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승계를 포기했다지만 (언론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누가 끝까지 지켜볼 것인가"라며 "정몽구 명예회장도 2006년 비자금 사건 때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선언만 하고 이행은 없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또 삼성 그룹의 정체성과도 같은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오너의 강력한 책임 리더십과 빠른 의사결정력, 장기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회장으로 대물림되는 과정에서 편법 의혹이 불거진 것이 문제지 오너 경영 그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오너 대체자로 승계가 이뤄지는 게 차라리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형 전문경영인 체제' 어떻게 만들어갈까

오너 일가가 실제로 경영을 내려놓는다고 해도, 그냥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한국 재계 풍토에서 '오너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은 상당히 어려운 보완과제가 필요한 일이다. 총수의 지배력 없이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포스코나 KT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등 '주인 없는 회사'의 폐단을 막을 장치도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이 3세경영에서 오너 체제를 끝낸다면 앞으로 삼성은 어떻게 될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게 된다. 국내에도 금융지주회사나 포스코, KT, KT&G 등이 이런 회사로 국민연금 등이 주요주주가 돼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형태로 굴러간다.

삼성도 바람직한 거버넌스 개혁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0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삼성생명 3개사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가능경영한 경영체제'를 주제로 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4세 승계 포기 선언의 이행은 삼성 준감위와 삼성의 컨트롤타워 격인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가 논의해야 하는 주요 이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회장의 의지와 결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삼성은 워낙 상징성이 큰 기업이라 (이 회장이 선언한대로) 실제로 경영권 승계를 포기하고 이사회를 개편한다면 (나라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큰 파장이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는 삼성 가문의 '마인드셋(Mind Set)'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삼성 오너 일가가) 앞으로 5년 안에 어떤 결정과 결단을 내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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