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화학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하는 윤보영 재무실장에게 올해는 쉽지 않은 해였다. 경영여건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회사의 자본이 메말라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효성화학의 재무관리를 총괄하는 윤 재무실장으로서는 자본잠식과 같은 재무적 위기를 피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에 윤 재무실장은 자본확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효성화학 초대 재무실장, 베트남 투자 조달 1962년생인 윤 재무실장은 효성의 전신인 동양나이론에 입사해 줄곧 효성그룹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회사에 입사해 자금기획팀, 무역금융, 국제금융, IR 등 재무와 유관한 업무를 담당해 왔다.
효성의 인적분할로 효성화학이 출범했을 당시 효성화학으로 자리를 옮기며 첫 임원 승진에 성공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효성화학의 재무실장을 맡아오고 있다.
효성화학 출범 초기부터 윤 재무실장의 어깨는 가볍지 않았다.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투자규모가 예정된 베트남 석유화학 사업을 효성화학이 가져오게 됐다. 이미 부채부담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효성화학의 재무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실제 2018년 6월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은 이미 367%, 차입금의존도는 62.3%에 달했다.
투자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은 윤 재무실장의 업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 시기 효성화학은 재무건전성보다는 투자를 위한 자금지원을 일순위로 뒀다.
실제 효성화학이 2019~2021년 3년간 자본적지출(CAPEX)로 투입한 금액은 1조3792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매년 2000억~3000억원 수준의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을 유지했음에도 차입금 증가세가 가팔랐다. 같은 기간 1조2964억원에서 1조9951억원으로, 부채비율은 353.8%에서 509.5%로 오르게 됐다.
베트남 공장이 가동될 경우 현금창출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재무부담이 다소 커지더라도 차입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단기차입금보다 장기차입금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또 중장기 자본조달에 쓰이는 신디케이트론을 통한 조달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3000억원' 규모 자본확충 당초 효성그룹의 예상과 달리 베트남 투자가 완료됐음에도 영업활동에서의 현금창출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와 공장 가동 차질, 석유화학 시장상황 저하 등이 겹치며 베트남 법인은 '돈 먹는 하마'가 됐다.
특히 2022년부터는 연간 적자가 시작되며 자본유출에 속도가 붙은 모습이다. 2021년 말 5000억원 규모였던 효성화학의 자본총계는 1년 뒤 2022년이 끝나갈 때쯤에는 1146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올 상반기에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설 위기에 처했다. 이에 윤 재무실장은 올해 내내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작업을 도맡았다.
보유 중인 토지를 재평가받는 일을 가장 먼저 진행했다. 그동안은 원가모형 방식으로 토지를 평가해 유형자산에 포함시켰는데, 평가모형을 변경했다. 원가모형이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만 반영한 가격을 장부가액으로 기재하는 방식이라면 변경된 재평가모형은 시가(공정가치)로 토지의 자산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1388억원이었던 효성화학의 토지 가치는 3350억원으로 뛰었다. 부채를 제외하고 발생한 자본확충 효과는 1509억원 규모에 달했다. 토지 재평가가 아니었다면 마이너스(-) 1146억원이 됐을 자본총계가 363억원이 됐다. 다만 그럼에도 부채 수준이 9000%에 육박했던 만큼 추가적인 자본이 필요했다.
이에 윤 재무실장은 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지주사 ㈜효성을 대상으로 하는 500억원의 유상증자로 자본조달에 나섰다. 토지 재평가와 자본조달을 통해 총 3000억원 규모의 자본확충에 성공한 셈이다.
◇앞으로 과제는 상환…
베트남 법인 흑자 '희소식' 올 3분기 효성화학의 자본총계는 908억원으로 나타났다. 토지재평가 금액과 신종자본증권으로 조달한 700억원이 반영된 결과다. 9월들어 발행한 3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과 ㈜효성으로부터 지원받은 500억원은 연말 기준으로 잡히는 올해연도 사업보고서에 반영되게 된다.
윤 재무실장이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재무 안정화를 이루는 일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 될 전망이다. 3분기 기준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은 3475% 수준으로 최악이었던 상반기보다는 가라앉았다. 향후 반영될 자본확충 성과를 감안해도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은 여전히 네 자리다. 자본을 줄이기보다는 부채를 줄여야 할 시점이다.
다만 차입금의 규모가 크다. 효성화학의 차입금은 2조원 중반대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차입금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차입구조가 단기화됐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은 3분기 기준 1조4425억원에 달한다.
금융비용 부담 역시 크다. 효성화학은 올 상반기에만 870억원을 금융비용으로 지출했는데, 이는 작년 상반기 대비 147% 늘어난 수치다. 효성화학이 발행한 기업어음과 회사채의 이자율이 6% 수준에 달하는 데다가 최근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이자는 연 8.3%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신종자본증권의 이자율은 발행일로부터 2년 이후에는 연 11.8%, 5년 이후에는 12.8%, 10년 이후에는 13.8%로 늘어나는 구조다.
다행인 점은 효성화학의 베트남 법인이 올 3분기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다만 올 3분기 시장수요의 둔화로 베트남 법인 흑자에도 불구, 효성화학은 2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증권가에서는 올 4분기 효성화학이 흑자를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