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THE CFO가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올해 일본제철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포스코홀딩스가 모처럼 이익을 봤다. 포스코홀딩스는 일본제철 지분 1.7%를 보유한 주주로 올해 상반기에만 847억원의 평가손익을 올렸다. 보유 상장사 지분(계열사 지분 제외) 가운데 가장 큰 평가손익을 안긴 곳이 일본제철이다. 포스코홀딩스는 24년째 일본제철 주요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제철은 한때 포스코의 스승이었다. 1973년 포항종합제철(포항제철소)이 1호 고로에 불을 지피는 데에 기여한 이들 중엔 일본제철 전신인 신일본제철이 보낸 기술자들도 있다. 1호 고로에 불을 붙인 지 24시간 후 쇳물이 흘러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애국가를 불렀는데, 신일본제철 기술자들도 이를 따라 불렀다는 후문이다.
◇1999년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에 일본제철과 '전략적 제휴'로 대응
이후에도 포스코홀딩스는 수십년간 일본제철에 꾸준히 임직원들을 파견해 선진 기술을 배워오도록 했다. 철강 기술력을 결정하는 건 곧 설비 설계 기술인 만큼 여기에 대한 학습에 집중했다. 2000년대 들어 포스코가 전 세계 조강생산량 1위를 기록하며 '청출어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제철로부터 배운 기술이 있다.
양사의 지분 관계는 1999년 시작됐다. 포스코가 일본제철을 앞지르기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는 중국 철강 업체들의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던 때로 다른 업체와의 이합집산이 하나의 대안으로 지목됐다. 포스코와 일본제철은 서로를 택했다. 일종의 전략적 제휴였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포스코는 꾸준히 일본제철 주식을 매입해 3.5%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당시 포스코 측은 "세계 철강업계의 통합화 추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아시아 철강업체 간의 협력을 확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최초 취득 당시 계획했던 매집 기간과 규모보다 길고 많았다. 일본제철과 전략적 제휴가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유 지분에서 발생하는 평가손익만 보더라도 일본제철 주식 매입은 효과가 있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일본제철 지분가치는 상승해 매년 수천억원의 평가손익을 포스코에 안겼다. 2007년 말 지분 3.5%의 장부가액은 약 1조4000억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는 지분 3.5% 취득에 투입한 자금의 약 두 배 규모였다.
양사의 대표적인 협력 사업 중 하나는 2006년 설립한 '포스코베트남(POSCO-VIETNAM Co., Ltd.)'이다.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 바리아붕따우 푸미공단에 지은 냉연공장이다. 냉연제품은 자동차용 강판이나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얇은 철판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수요가 증가하는 제품이다. 일본제철은 포스코베트남의 지분 15%를 취득하며 자금을 지원했다.
◇'특허침해 소송'에도 지분관계 지속...올해 서로에게 대규모 평가이익 안겨
훈풍이 지속될 것 같던 포스코와 일본제철 관계는 2010년대 들어 흔들린다. 결정적 원인은 일본제철을 포함한 일본의 철강산업이 한국과 중국의 철강산업에 뒤처지기 시작한 데 있다. 포스코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원재료 공동구매, 공동 해외 진출 등을 뛰어넘는 고강도 대책, 가령 구조조정과 합병 등이 일본제철에 필요했다.
2011년 일본 철강업계 1위와 3위인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이 합병을 발표한다. 그렇게 2012년 신일철스미토모금속(일본제철의 전신 중 하나)이 탄생했다. 합병 과정에서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포스코 지분율도 2.38%로 감소한다. 하지만 합병 효과는 크지 않았다. 신일철스미토포금속 지분가치는 2014년 말 6000억원대로 떨어졌다.
이 무렵 양사 사이에 '특허침해 소송'이 발생한다. 2012년 일본제철이 일본과 미국 법원에 포스코의 전기강판 생산 기술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송은 1심에서 계류되다 2015년 포스코가 일본제철에 300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 취하됐다. 당시 국내에선 일본제철의 포스코에 대한 견제 행위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러한 일들로 양사가 지분관계를 정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실제 2015년 포스코는 일본제철이 보유한 포스코베트남 지분 15%를 매입하면서 단독 법인 형태로 바꿨다. 또한 2017년 포스코는 일본제철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지분율을 1.7%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양사는 지분관계를 25년째 이어가고 있다.
현재 포스코홀딩스는 일본제철 지분 1.7%, 일본제철은 포스코홀딩스 지분 3% 이상 들고 있다. 과거 같은 수준의 업무 제휴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최근 양사 주가가 급등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평가이익을 안기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올들어 포스코홀딩스 주가는 118%, 일본제철 주가는 67% 상승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 확대로, 일본제철은 일본 경기 회복으로 많은 투자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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