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기업금융 영업 전략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재무라인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기업투자금융부분이 저마진 대출을 비우량 자산으로 규정하고 고마진 중심 영업을 공언하면서 자금 조달 측면에서는 숨통이 트였다. 다만 공세적인 영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려면 자본비율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은행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다른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권이다.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NH농협은행이나 하나은행에 비해 위험가중자산(RWA)을 늘리기 녹록지 않은 여건이다. 유 부행장의 자본비율 개선 여부에 우리은행 기업금융 명가 재건 성패가 달렸다.
◇조달비용 부담 덜었지만…대출 여력이 관건
우리은행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유도현 부행장이다. 유 부행장은 우리은행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시절인 2015년 비서실장을 지냈고 2017년 런던지점장으로 취임해 5년 간 선진 금융을 경험했다.
지난해에는 우리은행 CFO로 자리를 옮겼다. 유 부행장은 과거 본부장으로 승진한 뒤 2개월 만에 집행부행장보로 승진해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1968년생으로 내부 출신 부행장 중 나이가 가장 어린 것도 그의 행내 입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잇따라 취임하는 과정에서 유 부행장은 CFO 자리를 지켰다. 우리은행은 올해 인사와 조직 개편에서 영업통 행장과 부문장을 선임해 영업에 힘을 줬는데 이 과정에서 재무라인은 안정적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지난 7월 조 행장이 취임하고 이달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을 필두로 기업금융 영업 전략을 공개하면서 유 부행장도 숨가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영업 전략 변화에 맞춰 재무 기조에도 변화를 줘야하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측면에선 유 부행장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가파른 금리 인상 국면에서 대출 금리가 선제적으로 올라 지난해 은행이 수혜를 입었지만 조달 비용도 뒤따라 상승해 CFO 입장에선 머리가 복잡한 상황이었다. 최근 들어 조달비용 상승세가 주춤해 여수신 간 균형이 맞춰졌다.
강 부문장이 고마진 영업을 공언한 것도 유 부행장의 숨통을 트여주는 요인이다. 그는 이달 간담회를 열고 마진이 남지 않는 대출을 비우량 자산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고마진 중심 영업 전략을 펼치려는 의도로 읽힌다. 여신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면 CFO는 수신 측면에서 무리해 비용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강 부문장이 고마진을 남기면서 대출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하면서 유 부행장은 대출 확대 지원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대출 확대에 따른 RWA 증가에 대비해 자본비율을 관리해야 한다.
다만 기업투자금융부문의 공세적인 대출을 뒷받침하기엔 자본비율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CET1비율은 올 상반기 기준 13.4%다. 하나은행(15.72%), KB국민은행(15.22%), 신한은행(14.63%) 등 주요 시중은행은 물론 특수은행인 NH농협은행(16.08%)보다도 낮다. 강 부문장도 간담회를 통해 우리은행의 최대 약점으로 자본비율을 꼽은 바 있다.
◇'라이벌 구도' 농협은행에 밀리는 CET1비율
우리은행 기업금융 영업 전략이 성과를 내려면 유 부행장 주도로 CET1비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 최근 은행권은 일제히 법인 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영업 일선에서 고객을 확보한다 해도 CET1비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의미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다. 우리은행의은 과거 허약한 자본비율 탓에 주요 고객에게 대출 상환을 요청한 전례도 있다.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NH농협은행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올 상반기 NH농협금융지주보다 낮은 순이익을 기록해 5위로 내려 앉았다. 우리금융은 올해 연간 순이익 기준으로 NH농협금융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전력의 90%를 우리은행이 차지하고 있어 유 부행장의 어깨가 무겁다.
NH농협은행 CET1비율은 16.08%로 주요 은행 중 가장 높다. 우리은행과는 2%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다. NH농협금융도 법인 대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금융 대전에서 NH농협은행이 선방하면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연내에 NH농협금융과 격차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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