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처음으로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 적립금을 펀드에 투자한다. 투자처는 그룹 계열사인 우리자산운용의 OCIO 공모펀드다. 우리운용 OCIO 펀드 운용이력이 2년이 채 안 된 점을 감안,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등 외부 자산운용사 두 곳이 운용하는 공모펀드에도 DB적립금 일부를 투입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달 우리운용 '우리다같이OCIO 타겟리턴' 펀드에 DB적립금 33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우리은행이 DB적립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에 태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삼성자산운용 OCIO 공모펀드에도 각각 100억원씩 위탁했다. 도합 530억원 가량을 투입한 셈이다.
우리은행은 그간 DB적립금을 정기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했다. 지난해 말 우리은행의 DB적립금은 1조4743억원. DB적립금의 4% 정도를 복수의 실적배당형 상품에 분산 투입해 운용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의 적립비율은 124.2%로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었다. 작년 한해 예금 이자로 올린 이자 수익은 288억원이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말 만기가 도래한 적립금의 효과적인 운용 방안과 타 은행의 적립금 투자 이력 등을 DB적립금 운용위원회 등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며 "우리운용 OCIO 펀드의 경우 운용 이력이 1년을 조금 넘었기 때문에 리스크 배분 차원에서 타 운용사 펀드에도 투자를 함께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투자로 우리다같이OCIO 펀드의 순자산은 480억원으로 불어났다. 우리운용은 지난 5월 이 펀드를 설정, 고유재산 100억원을 투입해 운용해 왔다. 올 상반기엔 이 펀드 트랙레코드를 밑바탕 삼아 외부자금을 수혈해 OCIO 사모펀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11일 현재 우리다같이OCIO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0.36%였다.
최근 수년간 금융업권 중심으로 계열 자산운용사 OCIO 공모펀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2020년 말 KB국민은행은 계열사 KB자산운용 'KB타겟리턴' 펀드 시리즈에 2000억원 안팎 적립금을 태운 데 이어 최근 한투운용 등에 추가 적립금을 투자했다. 농협은행과 그룹 계열사는 NH아문디자산운용에 1700억원가량 적립금을 위탁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과 함께 민간 OCIO 시장이 나날이 커지면서 개별 운용사들의 상품 운용 트랙레코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그룹 주력 사업자인 은행이 운용사 펀드에 자금을 태워 지원하고, 동시에 자사 적립금 운용을 통해 퇴직연금 사업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OCIO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급격하게 오른 기준금리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 매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큰맘먹고 적립금과 유휴자금을 시장에 푼다고 하더라도 만기가 짧은 채권 기반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DB적립금 운용성과가 부채 증감으로 직결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신한은행의 경우 계열사 신한자산운용 OCIO 공모펀드에 적립금 투자 방안을 고민해 왔지만, 인사부서 임원이 노사 갈등 등을 우려해 현재까지 자금 투입을 미루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말께 일부 자금 투입이 검토되고 있지만, 투자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