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는 공개하는 재무정보가 제한적임에도 필요로 하는 곳은 있다. 고객사나 협력사,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거래를 위한 참고지표로 삼는다. 숨은 원석을 찾아 투자하려는 기관투자가에겐 필수적이다. THE CFO가 주요 비상장사의 재무현황을 조명한다.
최주선 대표이사 연임 후 삼성디스플레이(SDC)의 첫 대규모 지출은 모회사인 삼성전자에 20조원 넘는 거금을 대여해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라인 증설에 3년간 약 4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30조원에 육박하는 순현금 곳간 덕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 와중에 우선순위에서 밀린 사업도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의 대표 모델인 퀀텀닷(QD)-OLED의 생산능력(캐파) 확충을 위한 시설투자다. '이재용 패널'로 유명한 QD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적자를 해소할 필요성이 크나 삼성전자 대여금 여파로 기약 없는 상태다. 아직 액정표시장치(LCD) TV가 주력인데다 그룹 차원에서도 반도체 투자가 우선인 탓이다.
◇반도체 9조 적자 삼성전자, SDC 덕 연결적자 면해
2020년 12월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최주선 대표의 연임이 결정된 후 첫 해인 올 초 삼성디스플레이에는 두 가지 큰 뉴스가 나왔다. 2월에 모회사 삼성전자에 20조원을 대여해준다는 것과 4월 노트북, 태블릿에 들어가는 IT용 OLED 캐파 증설에 3년간 약 4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1분기에 10조원, 2분기에 11조9000억원을 이미 대여해줬다. 총 22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약정액을 이미 넘었다. 삼성전자 재무제표에 장기차입금으로 분류된 점을 고려하면 최소 1년 이상 빌려 쓸 계획이다. 달리 말하면 삼성디스플레이로선 1년 넘게 22조원 가까운 자금이 묶인다는 뜻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지난해 말 현금성자산은 30조9866억원, 차입금을 뺀 순현금은 29조6745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2조원 가량을 모회사에 빌려주고 나머지 돈으로 설비투자(CAPEX) 등을 감내해야 한다. 매년 적어도 5조원 이상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순유입되는 만큼 충분한 여력을 갖췄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형님(삼성전자)에게 22조원을 빌려줄 만큼 현금부자가 된 비결에는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는 중소형 패널이 있다. 디스플레이 경기를 타긴 하나 삼성디스플레이는 별도기준 5조~7조원 규모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를 내면서 순항해 왔다. 작년에는 EBITDA가 8조원을 돌파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비교군(피어그룹)인 LG디스플레이가 적자에 허덕이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돋보인다.
중소형 OLED는 스마트폰 등에 주로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삼성전자란 든든한 수요처는 물론 애플도 고객사로 두면서 탄탄한 매출을 이어갔다. 스마트폰도 경기를 타지만 플래그십(대표 브랜드) 효과로 인해 어느 정도 실적을 거둘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올 6월 말 매출은 13조972억원으로 전년 동기(15조6812억원)대비 16.4%, 영업이익은 2조1505억원에서 1조6191억원으로 24.7% 줄었다. 다만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9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면서 별도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바람에 오히려 존재감이 빛났다. 삼성전자가 연결기준 적자 전환을 면하게 된 것은 종속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 덕분이다.
◇QD 연간 조단위 적자, 아직은 LCD TV가 주류
삼성디스플레이는 2017년 중소형 OLED 생산라인(A3~A4 공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 별도기준 9조원의 CAPEX를 지출한 것 외에는 연간 1조~3조원 규모의 투자만 유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도 반도체처럼 24시간 생산체제를 갖고 있으나 반도체 만큼의 CAPEX가 필요하지 않다. 영업현금흐름 순유입 규모는 적어도 5조원, 많으면 9조원에 달하는 만큼 잉여현금이 연평균 4조원에 이른다.
이렇게 현금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곳간에 누적된 순현금만 30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IT용 OLED 투자도 3년간 약 4조원, 연평균 1조원 웃도는 수준이라 큰 부담이 되진 않는다. 형님에게 20조원 넘게 빌려줘도 큰 문제가 없는 비결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재용 패널이라 불리는 QD-OLED 캐파 확대를 위한 투자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다.
QD-OLED가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미묘한 타이밍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9년 10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6년간 13조1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이 회장(당시 부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방문해 "지금 LCD 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대형 디스플레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 뒤 나온 조치다. 2025년까지 시설에 10조원, 연구개발(R&D)에 3조1000억원을 쓰겠다는 복안이었다.
사실 이 회장의 말은 중소형 패널에 쏠린 삼성디스플레이의 사업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였지만 그 직후 나온 투자계획이 QD-OLED 생산 및 R&D에 쓰이기로 하면서 오너 이름이 붙었다. 문제는 아직 QD 관련 사업이 적자라는 점이다. 공표된 적은 없으나 시장에 알려진 적자 규모는 연간 조 단위다.
생산원가가 여전히 높아 제값에 팔지 못한 탓이다. QD 패널의 연간 생산량은 200만대 수준으로 LG디스플레이의 대형 패널 생산량의 5분의 1 정도 밖에 안 된다. 결국 캐파 확대로 규모의 경제를 키워 원가를 낮추는 게 해법이다.
그러나 주요 수요처인 삼성전자가 LCD 기반의 QLED를 TV 주력으로 삼으며 QD는 라인업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글로벌 OLED TV 시장이 크지 않은 데다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가 우선인 만큼 오너 이름이 붙은 패널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망설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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