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급성장 중인 시장 속에서 후발주자의 사정은 혹독하다. 날로 커지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시장 규모에 걸맞은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선두주자들 못지 않는 시장 영향력을 지니는 것이 통상적인 후발주자들의 목표다.
하지만 이 시장이 급성장 시장 중에서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라면, 또 '후발주자'가 배터리 사업에 사활을 건 SK그룹이라면 이는 더 이상 '통상적인' 경우라고 볼 수 없다.
SK온이 바라보는 지점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의 유의미한 수준의 존재감이 아닌 '글로벌 1위'다. 선두주자들 못지 않는 영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리를 탈환하는 것이 SK온의 목표다.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이후 글로벌 '톱'은 자연스럽게 SK온의 숙명이 됐다.
통상적인 후발주자가 아니었기에 그간의 사정도 더욱 녹록지 않았다. 배터리 시장의 성장률을 따라가기 위해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면서도 수익성을 쫓아야 했다.
조직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에 나선 인물은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이다.
2021년 10월 말 취업제한이 해제된 최 수석부회장은 2021년 12월 17일 자로 SK온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초창기부터 배터리 사업에 폭넓게 관심을 가졌던 최 수석부회장이 직접 사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최 수석부회장이 SK온의 '책임 경영'을 맡기 시작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SK온은 그룹의 앞날을 바꿀 수 있는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상징적인 기업인 것은 맞았으나 시장에서는 이제 막 태어난 신생 기업이었다. 기업 구조와 체계 등을 갖춰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수주와 조달 등 막중한 업무를 이어가야 했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지배구조도 상 SK온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다. 사업지주회사이자 투자회사로 거듭난 SK이노베이션에 SK온은 엄연히 종속된 존재였다. 결국 이슈의 근원지인 SK온을 이끌 선명한 리더십과 더불어 모회사 SK이노베이션까지 아우를 수 있는 리더가 필요했는데 그 적임자가 바로 최 수석부회장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성장 과정에서 모회사 지원과 회사 안팎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는데 오너 경영인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무게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 부임 이후 단행한 것은 'C레벨 인사'다.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진교원 전 SK하이닉스 개발제조총괄이 부임했고, 지주사에서 비서실장을 맡던 최영찬 사장이 경영지원총괄로 부임했다. 가장 중요한 '조달'을 담당할 재무담당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글로벌기업 금융부문장을 맡던 김경훈 부사장을 영입했다.
이밖에 박성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와 맥쿼리증권 에쿼티 애널리스트였던 박정아 부사장을 글로벌얼라이언스 담당으로 영입하는 등 외부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JP모간과 미래에셋증권 등을 거쳐 CJ대한통운 성장전략팀 상무였던 박노훈 부사장 역시 재무전략담당으로 영입됐다.
기존 경영진들과 새로 수혈된 임원들은 작년 SK온을 움직이며 성장통을 함께 한 인물들이다. 다시 말해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면서 분위기 반전의 토대를 만든 주요 인물들인 셈이다. 그 중심에는 최 수석부회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