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는 2020년 국책은행으로부터 차입한 3조원의 긴급운영자금을 약 2년 만에 상환했다. 부진한 영업실적 속에서 대규모 현금흐름을 만들어준 것은 투자지분 매각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메카텍 등 자회사를 잇따라 매각한 재원을 활용해 채무를 상환하고 우량 자회사를 확보하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유상증자에도 채무상환 부담…현금흐름 부진에 보강책 필요두산에너빌리티는 2010년대 중반부터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2020년 상반기에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총액 3조원의 긴급운영자금을 지원받았다. 채권단과 두산그룹간 채결한 재무구조 개선약정에 따라 이후 두산그룹 차원의 자구노력이 병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한 대규모 유상증자다.
하지만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은 대부분 채무상환에 이용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긴급자금지원 이후 실시한 주주배정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는 2020년 12월과 지난해 2월 총 두 차례다. 2020년 12월 ㈜두산 출자분 4352억원을 포함해 유상증자로 조달한 1조2125억원은 전액이 채무상환에 사용됐다. 지난해 2월 ㈜두산 출자분 2524억원을 포함해 유상증자로 조달한 1조1478억원 중에서는 5000억원이 채무상환에 이용됐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서의 신주인수권 행사로 자본이 일부 보강되기는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7년 5월 ㈜두산 인수분 920억원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 BW를 발행했다. 이외에도 2021년 7월 두산인프라코어(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투자사업부문을 흡수합병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가 2017년 8월 발행한 5000억원 규모 BW를 떠안았다. 이들 BW에서의 신주인수권 행사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6374억원의 자본이 확충됐다.
하지만 경상적인 현금흐름은 여전히 부진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설비와 담수설비 제조에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별도 기준 잉여현금흐름(FCF)이 2015~2020년 6년간 연평균 마이너스(-) 3763억원을 기록할 만큼 현금흐름이 악화됐다. 이 기간 2016년을 제외하고 잉여현금흐름이 모두 적자일 정도였다. 재무구조 개선시기에는 배당수취도 어려웠다. 배당수익은 같은 기간 연평균 21억원으로 크게 미미했다.
◇두산엔진·두산인프라코어·두산메카텍 지분매각…비경상 현금흐름 창출이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로서는 비경상적인 현금흐름을 발생시켜 현금창출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채무상환과 더불어 수익성 향상을 위해서는 신규 자회사를 확보하는 사업구조 재편의 과제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퓨얼셀이나 두산큐벡스가 재무구조 개선시기에 새로 편입된 대표적인 자회사다.
현금흐름을 보강한 대표적이 수단이 보유지분 매각이었다. 긴급자금지원 이전인 2018년 6월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엔진(현 HSD엔진) 지분 42.66% 전량을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소시어스-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765억원을 벌어들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분매각 직전에 두산엔진 투자사업부문을 분할해 흡수합병했다.
그해 8월에는 두산밥캣 지분 10.55% 전량을 3681억원에 블록딜로 처분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엔진 투자사업부문 흡수합병 때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하게 됐는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이 지분에 대한 매각을 결정했다. 당시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였던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밥캣 지분 55.34%를 보유하고 있어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분을 매각해도 여전히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두산에너빌리티는 핵심 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작업에 착수했다. 2020년 12월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021년 7월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29.48% 전량을 현대제뉴인(현 HD현대사이트솔루션)에 처분하면서 8500억원을 손에 쥐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분매각 직전 두산인프라코어 투자사업부문을 분할해 흡수합병하면서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동시에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했던 인천 남공장도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하게 됐다. 두산밥캣은 같은 시기 ㈜두산이 산업차량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한 두산산업차량 지분 전량을 7500억원에 인수했는데 두산에너빌리티는 인천 남공장을 두산산업차량에 양도하면서 557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완료한 두산에너빌리티는 또다른 핵심 자회사 두산건설로 눈을 돌렸다. 두산건설은 2020년 3월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분 100%를 확보한 자회사였다. 2021년 12월 큐캐피탈파트너스 등 6개 PEF로 구성된 컨소시엄 주도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더제니스홀딩스유한회사가 두산건설 지분 53.65%(우선주 포함)를 확보하면서 경영권이 넘어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5월 두산건설의 총액 4200억원 주주배정 유상증자 때 3000억원을 책임지는 등 지금지원을 지속했기 때문에 두산건설 계열분리로 추가적인 지원부담을 털어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금흐름 측면에서는 두산건설 경영권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유입된 자금은 없다. 더제니스홀딩스유한회사가 두산에너빌리티 보유지분 인수가 아닌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2500억원을 출자하는 형태로 경영권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산에너빌리티는 더제니스홀딩스유한회사 설립에 1200억원을 후순위 출자했기 때문에 자금소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 자금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두산건설 비영업용자산 처분대금을 지분율(46.35%)대로 배분받을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해뒀기 때문이다. 당시 두산건설 비영업용자산은 장부가액 기준 약 3200억원이다.
◇부채비율 축소 성공…자회사 자금지원 여력도 안정권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2월 긴급운영자금 3조원을 전액 상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비경상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두산메카텍 지분 100% 전량을 범한산업-메티스톤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1050억원을 손에 쥔 것이 대표적이다. 두산메카텍은 2020년 2월 ㈜두산이 보유지분 100% 전량을 현물출자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 완전자회사로 편입된 곳이다.
일련의 유상증자와 보유지분 매각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동시에 자본을 보강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긴급자금지원을 받은 2020년말 3조4607억원이었던 별도 기준 자본총계는 지난해말 6조1136억원으로 상승했다. 2020년말 222.1%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도 지난해말 115.7%로 하락했다.
자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여력을 보여주는 이중레버리지비율(종속·관계·공동기업 투자지분/자본총계)도 같은 기간 89.2%에서 73.6%로 개선됐다. 두산퓨얼셀이나 두산큐벡스가 자회사로 추가됐지만 몸집이 큰 두산인프라코어 전체지분과 두산건설 일부지분을 덜어내는 동시에 자본을 확충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