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50년까지 세계 7위권의 항공우주 전문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경영진은 '보잉에 버금가는 아시아 대표 기업'으로 거듭나자는 일성을 외쳤다.
실적 확대를 발판 삼아 외형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맞대려면 투자자 소통(IR) 역시 선진적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 항공기 제조사 보잉 등 해외 업체와 견줘보면 KAI의 정보 안내 수준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KAI는 매출과 신규 수주 등 영업에만 초점을 맞춰 연간 전망을 공개하는 반면, 록히드마틴·보잉이 현금흐름과 자본적 지출(CAPEX) 가이던스까지 제시한 대목은 귀감이다. 컨퍼런스콜 음원, 실적설명회 프리젠테이션(PT) 내용 등 데이터베이스(DB) 조성에서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가이던스 범위를 넓히고,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하는 게 IR 고도화의 관건인 셈이다.
◇글로벌기업 가이던스, 'OCF·FCF' 중점관리 반영록히드마틴은 글로벌 최대 방위산업체로 전투기, 미사일, 인공위성 등을 망라해 생산하는 회사다. 2022년 록히드마틴의 연결 기준 매출은 659억8400만달러(86조8085억원)로, 같은 해 KAI가 실현한 매출 2조7869억원과 견줘보면 31배 넘는 격차가 존재한다.
외형이 거대한 만큼 록히드마틴은 기업 정보를 세밀하게 공개해왔다. 연초에 제시하는 가이던스 공개 항목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에 록히드마틴이 2022년 4분기 실적 설명 컨퍼런스콜을 진행하면서 공개한 자료집에는 '2023년 전망(Outlook)' 항목이 등장한다. △매출 △영업이익 △희석 주당순이익(Diluted EPS) 등의 예상치 구간을 기재했다.
재무 지표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난다. 록히드마틴은 2023년 영업활동 현금흐름(OCF)을 81억5000만달러(10조7629억원)로 내다봤다. 자본적 지출(CAPEX)은 최대 19억5000만달러(2조5740억원)로 전망했다. 주주 친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취지에서 잉여현금흐름(FCF) 예상값과 자사주 매입 계획치도 공개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한발 더 나아갔다. OCF 전망치를 주요 사업별로 나눠 제시했다. 2023년 예측 결과를 살피면 방산·우주 부문(BDS)의 현금흐름이 마이너스(-) 10억달러에서 -5억달러 구간에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보수에 주안점을 맞춘 애프터마켓 부문(BGS), 상용기 제조 부문(BCA) 등을 모두 반영한 OCF가 적게는 45억달러, 많게는 6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보잉은 3개년에 걸친 중기 경영 목표도 공개했다. 2026년까지 FCF를 최대 100억달러 수준으로 통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연간 매출은 1000억달러, 영업이익률은 10%까지 도달하겠다고 명시했다. 연구·개발(R&D) 비용과 CAPEX 등 예상 투자액도 기술했다.
가이던스 공개 항목을 매출과 수주액으로 한정지은 KAI와 다른 모양새다. 다만 KAI는 올해 1월에 '글로벌 KAI 2050' 비전을 발표하면서 R&D 투자 목표도 거론했다. 2027년까지 5년간 1조5000억원을 집행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분기 실적 설명회 자료집에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둘러싼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다.
◇보잉 '질의응답' 투명한 공개, KAI는 과거 설명회 '깜깜이'IR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DB 구축 노력에서도 KAI와 글로벌 기업의 차이는 확연하다. KAI는 2020년 11월 이래 진행한 분기 실적 설명회 자료집만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반면 록히드마틴은 2011년 이후 분기별 PT 파일을 빠짐없이 업로드했다. KAI는 컨퍼런스콜 음성 파일을 올리지 않지만, 록히드마틴은 2021년 이후 설명회 음원을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보잉은 2018년 이후 지난해 4분기까지 5개년치 IR 자료집을 게시했다. 특히 실적 설명회 전문을 활자로 풀어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목이 돋보인다. 기업 측 발표자, 투자은행(IB)업계 애널리스트 등의 △이름 △소속기관명 △직책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했다. 2022년 4분기 컨퍼런스콜에는 데이비드 캘훈 보잉 최고경영자(CEO)를 필두로 브라이언 웨스트 최고재무책임자(CFO), 맷 웰치 IR담당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실적 브리핑 내용에 국한하지 않고 발표자와 청취자 사이 질의응답 내용까지 가감없이 정리했다. 컨퍼런스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기업의 경영 화두나 사업·재무 측면에서 눈여겨볼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키 용이하다.
KAI 관계자는 "국내 동종업계의 IR 경향을 주로 고려해 자사 데이터를 공개해왔다"며 "자율적 판단 아래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IR 활동의 본질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