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내다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래 실적 예상치를 공개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느낀다. 어느 수준까지 예측해 투자자들에게 공개할 것인지, 정확도 향상이 여의치 않다면 아예 전망을 포기해야 할지 고심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현대제철의 실적 전망은 '모범'으로 평가할 만했다. 매출과 생산량, 판매량 예상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공개했기 때문이다. 재무적 목표까지 자신있게 거론했다. 차입금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금액을 기재한 대목도 돋보였다.
예상 숫자를 분기마다 업데이트해 공개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측한 근거도 간략하게나마 적어놨다. '건설 지표 증가 추세'라는 문구부터 원·달러 환율 예상 수준까지 덧붙였다. 가이던스(실적 전망) 수정치도 내놓지 않고, 판단 근거도 드러내지 않는 지금과 확연히 달랐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던 취재원은 "시장에 신뢰를 심어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강조했다.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할 때였고 외부 자금 조달이 절실했다고 한다. 시장과 밀접하게 협력할 필요성을 인식한 만큼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가이던스에 주목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현대제철의 가이던스는 축소됐다. 연간 판매량 전망치만 공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사연을 들어보니 '오차'를 둘러싼 우려가 결정적이었다. 실제 성과와 간극이 큰 예상치를 안내했다간 자칫 시장 투자자들의 잘못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돼서다.
실적에 가까운 전망치를 내놓는 일은 '신(神)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걸까. 기업마다 전망치를 도출하는 계산 모형을 지니고 있지만 변수의 흐름까지 정확히 짚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후판 가격의 변동성이 심한 탓에 가이던스 예측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한국조선해양 관계자의 고충 토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관건은 실적 예상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해외 상장사 사례를 참고해 숫자 전망치의 상·하단 범위를 설정해 공개하는 건 어떨까. 실제 성과와 가이던스의 오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전망치를 도출한 사유와 기반 데이터를 상세하게 기술해 공시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역시 검토해볼 만하다.
투자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속속들이 아는 주체는 기업 그 자체인 만큼, 전망하기 어렵다고 마냥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의 성장성을 눈여겨보고 베팅하기 때문이다. 가이던스는 오늘의 결실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유추하는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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