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 2위' 현대제철은 그동안 판매량 목표를 달성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판매고 실적이 가이던스 대비 8% 낮게 나왔다. 당초 예상과 달리 국내외 경기가 악화됐고, 파업과 태풍 피해 등 돌발 변수도 발생한 탓이다.
한국IR협의회는 '상장법인 IR모범규준'을 통해 "경영 환경 변화로 인해 예측치가 변경될 경우 변경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라고 일선 기업에 권고한다. 시장 관계자들에게 기업 투자에 관한 잘못된 신호(signal)를 주는 만큼, 신속한 정보 갱신이 필요하다는 취지가 반영됐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2015년 이후 전망치 정정 공시를 중단했다.
2022년 현대제철은 별도기준 판매량 전망치를 1997만톤으로 설정했다. 2021년 실적(1911만톤)보다 4.3% 늘려잡은 숫자였다. △고로(용광로) 제품 1175만톤 △전기로 생산품 737만9000톤 △차량부품 및 강관 84만1000톤 등으로 영업 계획을 세웠다.
당시 판매량 전망치를 높게 잡은 건 기관 보고서를 토대로 2022년에 철강 수요가 전년대비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 대목과 맞닿아 있다. 현대제철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요 산업이 회복세를 시현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세계철강협회(WSA)가 발표하는 단기 수요 전망(SRO) 자료를 근거로 삼았다.
건설·자동차·조선 등 전방 산업군에 대한 전망도 낙관적으로 인식했다. 건설 수요가 견조한 상태를 유지할 거라고 판단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예산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편성한 사실과, 건설산업연구원이 예측한 투자액 데이터를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는 당초 예측한 판매량에 미달했다. 1828만7000톤으로 집계됐는데, 연초 전망치보다 168만3000톤이나 적은 규모였다. 오차율은 마이너스(-) 8.4%로 나타났다. 고로 제품 1079만5000톤, 전기로 양산품 667만7000톤, 모빌리티 관련 생산물 81만5000톤 등이 팔리는 데 그쳤다.
판매량 실적이 가이던스에 한참 못 미친 건 신년 전망과 다르게 국내외 경제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물가가 급등하고 금리가 가파르게 높아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둔화됐다.
국내 공공·민간 부문의 건설 수주가 줄어드는 등 전방산업의 수요 부진으로 귀결됐다. 태풍 피해에 따른 공장 조업 중단,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납품 차질 역시 현대제철의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끼친 요인이다.
철강 제품 판매량과 실적의 괴리는 해소되지 않는 현상이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추이를 살펴보면 해마다 실제 판매량이 전망치보다 적었다. 2022년뿐 아니라 2020년(-7.95%), 2019년(-5.7%)에도 오차율이 -5%를 넘어섰다.
현대제철의 가이던스 정정 공시는 2015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2021년에 들어선 김원진 재경본부장 체제에서도 여전히 매년 1월에만 전망치를 공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2000년대 강학서 CFO 재임 당시 한 해에만 두 차례나 실적 예상값을 수정해 알린 대목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전망을 수정해 공시하는 건 의무 사항이 아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시장의 투자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의지 표명 차원에서 가이던스를 제공해왔다"며 "전망과 실적의 격차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대신 실적 변동성에 따른 재무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