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지가 두산으로 다시 복귀했다.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올해 9위로 추락한 두산 베어스가 'FA 최대어'를 품었다. FA 시장에 나온 리그 최고 포수 양의지의 몸값은 6년 총액 152억원, KBO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당초 '머니 게임'에서 원구단인 NC 다이노스가 밀릴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룹의 주머니 사정으로 내부 FA 단속조차 어려움을 겪어왔던 두산이 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자 시장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두산 베어스는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 이승엽을 11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역대 감독 최대인 총 18억원(계약금 3억원·연봉 5억원)에 사인했다. 이승엽과 양의지라는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걸출한 스타들을 영입하며 왕조 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스타 출신 한두명을 영입한다고 우승을 담보하지는 않겠지만 두산은 어쨌든 우승을 위한 초기 비용으로 170억원을 투자했다. 막 채권단 관리에서 졸업한 두산그룹이 프로야구 우승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셈이다.
앞서 두산그룹은 2020년 3월 주력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KDB산업은행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한 지 23개월 만인 지난 3월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2년 동안 클럽모우CC를 시작으로 두산타워, 두산솔루스, ㈜두산 모트롤BG(사업 부문), 두산인프라코어 등 그룹내 핵심 자산을 대거 매각했다. 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회사들이 모두 포함됐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대단했다.
두산 베어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두산이다. 두산 베어스의 사업 구조는 간단하다. 입장수입과 광고 등으로 얻는 사업수입이 매출의 전부다. 여기에서 구단 운영비, 선수단 인건비 등을 제하면 영업이익이 나온다.
입장수입은 매년 100억원대에서 일정하게 유지된다.(2020년, 2021년은 코로나 특수 상황 제외) 결국 그룹 계열사나 서울시의 광고 수입(유니폼이나 야구장에 들어가는 회사 광고)과 같은 사업수입이 야구단 운영의 핵심인 셈이다.
두산 베어스는 적게는 20%, 많게는 36% 가량을 그룹 계열사의 광고 수익으로 매출을 올린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을 통해 발생하는 수입이 대부분이다. 상황에 따라 해마다 사별 금액이 달라지지만 그룹 전체 매출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실제 채권단 관리 체제 하에서도 두산중공업의 매출은 5억원 안팎으로 급감했지만 14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두산인프라코어를 통해 안정적인 그룹 수입을 올렸다. 쉽게 말해 그룹에서 안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과연 두산그룹에게 두산 베어스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일까. 야구라는 스포츠를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회사가 넘어가기 일보 직전에도 야구단을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두산 베어스는 야구단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1991년 이전까지 두산의 주력 사업분야는 현재의 중공업 분야가 아닌 소비재 중심, 특히 주류산업이였다.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었던 OB맥주의 이름을 따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전신)라는 팀명으로 프로야구 창단멤버로 참여했다. 소비자와 밀접한 소비재 중심의 사업 구조였기 때문에 광고 효과나 사업적 효과를 목표로 야구단을 운영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두산그룹은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일반 소비자와 접점을 찾을만한 기업은 거의 없어졌다. 그룹 이미지 개선 효과 외에 특별한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야구단을 운영할 필요는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0년 SK그룹이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게 매각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신들보다 야구단을 더 잘 운영할 수 있고 실제 유통기업인 신세계그룹이 사업적 측면에서 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SK그룹 임원은 "야구단에 매년 200억원을 지원했는데, 10년동안 약 2000억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라며 "2000억원이면 기업 여러개를 살 수도 있고, 새로운 기업을 몇개는 창업할 수도 있는 기회인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빚잔치 끝내자마자 선수들 몸값이나 올려 한국 야구의 거품만 야기하는게 두산그룹이 할 일은 아닌 듯하다. 두산그룹의 핵심이자 미래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제 막 위기를 벗어났다. 에너지기업으로 본궤도에 안착해 정상 기업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룹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할 때다. 두산은 세계와 경쟁하면서 한국 경제를 살릴 의무가 있다.
두산 베어스의 팬들은 엄밀히 말하면 두산의 팬이 아니라 '베어스'의 팬이다. 두산이 아닌 다른 기업이 주인이 되더라도 영원히 베어스의 팬으로 남을 것이다. 두산은 야구단과는 비교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빅딜을 수행한 전례가 수없이 많다. 그 이유 역시 두산이 더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려는 것이었다.
최근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이승엽과 양의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찍은 한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우승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듯 박 회장의 환한 미소가 눈에 띈다. 두산그룹에게 베어스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