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기업의 움직임은 돈의 흐름을 뜻한다. 자본 형성과 성장은 물론 지배구조 전환에도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손길이 필연적이다. 자본시장미디어 더벨이 만든 프리미엄 서비스 ‘THE CFO’는 재무책임자의 눈으로 기업을 보고자 2021년말 태스크포스를 발족, 2022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최고재무책임자 행보에 투영된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THE CFO’가 추적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총수로서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겠다는 의지표명이다. 컨트롤타워 부활설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과거에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승진'으로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컨트롤타워 부활이 가장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총괄 CFO' 존재다. 미래전략실 시절 전략팀장으로 불렸던 보직이다. 계열사간 사업조정과, M&A(인수합병)와 지배구조 정비 등을 지휘했는데,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기능 마비로 묵은 과제들이 다수 생겼다.
삼성그룹의 아킬레스건은 이재용 회장의 불충분한 지배력이다. 관련법 개정 시 일순간에 약화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 현금을 100조원 이상 쌓아두고도 제대로 된 M&A가 7년 째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김종중 전 사장 총괄CFO로 활약
미전실(2010~2017년)은 해체직전 총 7개팀으로 구성돼 있었다.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 등이다. 이중 전략팀이 그룹 자금흐름에 대한 통제권을 쥔 핵심 조직이었다. 계열사 간 중복사업 조정과 자원배분서부터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과 비주력사업 정리 등을 진두지휘했다. 전략팀에서 주로 각 계열사에 CFO들이 배출된 이유기도 하다.
해체직전까지 전략팀장을 맡았던 인물은 김종중(사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다. 김 전 사장은 ‘실’에서의 오래 근무를 기반으로 CEO까지 오른 이후 전략팀장 역할을 수행했었다. 회장비서실 재무팀 담당부장(1995년)과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담당임원(2001년),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담당임원(2006년)을 거쳐 2010년 삼성정밀화학 대표(사장)까지 지냈다. 2013년부터 미전실 전략1팀장을 맡았고 2015년부터 전략팀장(전략 1팀과 2팀 통합)이 됐다.
김 전 사장은 그룹 역사에서 손꼽히는 빅딜들을 지휘했다. 삼성그룹은 2014년 11월 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과 방산부문(삼성테크윈)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2조원 규모의 빅딜에 나섰다. 이어 2015년 하반기엔 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삼성첨단소재 등 화학계열사 3곳을 롯데그룹에 3조원에 매각했다.
이른 바 비주력사업을 정리하는 대대적인 그룹 사업재편이었다. 당시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와병(2014년 5월)한 직후였다. 이재용 부회장이 존재감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기도 했는데 미전실 전략팀이 선봉장 역할을 했다.
비슷한 시기 추진된 그룹 지배구조 재편도 전략팀이 대응한 사안이다. △2014년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이다. 이는 2017년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이 과거 경제개혁연대 소장(2006~2017년) 시절 김종중 전 사장이 자신에게 자문을 구한 사안들이라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사라진 총괄CFO, 멈춘 사업·지배구조 재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2017년 2월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김종중 전 사장도 함께 퇴임했다. 이후 테스크포스(TF) 형태로 컨트롤타워가 사업지원TF(삼성전자)와 EPS경쟁력강화TF(삼성물산), 금융경쟁력제고TF(삼성생명) 등 3개로 쪼개졌다.
총괄CFO 보직도 당연히 사라졌다. 전자계열사 사업과 재무를 조율하는 사업지원TF에 총괄CFO와 비슷한 보직자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 없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시각이다. 구조적으로 나오기 힘든 측면이 있다.
미전실은 그룹지배구조 상 중간단계에 위치해 있는 삼성전자에 속해있으면서 그룹전체를 컨트롤했다는 것이 사회적 반감을 사 해체한 측면이 있다. 세 개로 쪼개진 TF도 적극적으로 기능을 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
총괄CFO 부재로 난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져있다. 총수의 회장 취임 후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안이 ‘지배력’이다. 삼성 지배구조는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재용 회장은 일가와 함께 삼성물산 지분을 31.31%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사 삼성전자 개인 지분율은 1.63%에 불과하다.
특히 삼성전자 지배력은 관련법이 개정될 경우 취약해 질 수 있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지분 8.51%를 보유한 삼성생명이고 △삼성물산 5% △이 회장 등 일가와 복지재단 등이 5.6% △삼성화재가 1.49% 보유 중이다. 모두 합쳐야 20%를 조금 웃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8.5%)를 2%만 남기고 모두 해소해야 하는 이슈가 생긴다. 6.5%를 남에게 팔지 않고 그룹에서 소화하려면 23조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 삼성물산을 지주사로 두는 체제전환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더 큰 재원이 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현실적이고 정교한 솔루션이 요구되고 있다.
그룹을 관통하는 M&A 부재도 미래경쟁력측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롯데와의 빅딜(2015년) 이후 눈에 띄는 M&A는 2017년 삼성전자의 하만인수가 끝이다. 이 탓에 삼성전자는 올 3분기말 기준 순현금이 116조원에 이르고 있다. 매분기 IR(기업설명회)에서 투자자들에게 현금활용 계획에 대해 브리핑 하는 것이 정례화될 정도로 M&A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다.
◇과도기 컨트롤타워 필요, 현직 CFO 주목
이에 전문가도 이 회장의 승진을 계기로 컨트롤타워를 복원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측면이 있다. 이에 일각에선 단기적으론 권한을 제한한 과도기적 형태 컨트롤타워를 제안하고 있다.
옛 미전실이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각 계열사 CEO가 수행하는 역할을 했다면, 새 컨트롤타워는 결정권자가 아닌 제안권자 역할만 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속도 미전실이 삼성전자에 위치했듯 특정 계열사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꾸릴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삼성이 투명경영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준법감시위원회와 비슷한 형태다. 삼성 지시를 받지 않는 독립조직으로 2020년 2월 출범해 삼성계열사들의 준법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정성엽 머로우소달리 대표는 “삼성과 같은 대그룹은 현재 구조로는 의사결정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분명히 있긴 해야 한다”며 “다만 과거 미전실처럼 법적 근거나 실질이 없는 형태는 반발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계열사소속이 아닌 독립적인 조직으로 출범해 각 이사회에 그룹 전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며 “이사회는 해당 가이드라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후 회사와 주주이익에 부합하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면 되는데, 이 같은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가 부활할 경우 총괄CFO는 현직 CFO나 CEO들 중에서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컨트롤타워 경험이 가장 풍부한데다 이미 경영자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사 삼성전자 CFO는 박학규 사장이다. 구조조정본부 담당임원(2002~2006년)과 전략기획실 담당임원(2006~2008년)을 지냈다. 김종중 전 사장이 전략팀장으로 있던 시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지원팀장(2014년)과 미전실 경영진단팀장(2014~2017년) 역할을 맡았었다.
삼성전자 CFO로 있었던 최윤호 삼성SDI 사장도 총괄CFO에 어울린다는 관측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미전실 전략팀 담당임원으로 일하며 총괄CFO 밑에서 직접적으로 실무를 도왔다. 이어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사업지원TF 담당임원을 거쳐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CFO를 맡다가 올 초 삼성SDI 대표로 발탁됐다.
김종성 삼성SDI 부사장(CFO)도 미전실 전략1팀 담당임원(2011년) 경험이 있고, 김성진 삼성전기 부사장(CFO)은 회장비서실 재무기획 담당과장(1993~1996년)과 전략기획실 담당부장(2004~2007년)을 지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재 사업지원TF에서 재무업무를 하는 인물들이 있겠지만 그들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들이 계열사 현직 CFO나 CEO”라며 “컨트롤타워가 부활하면 이들이 총괄CFO 후보군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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