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CFO 이후 어느 자리에 선임됐는지를 보면 해당 기업이 CFO라는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는지 엿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차 역대 CFO들은 모두 그룹 내 중요한 자리로 이동했다. 계속해서 관련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한 이들도 있고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룹 '컨트롤 타워'의 책임자로 선임돼 CFO로서 쌓은 관리·조정 능력을 뽐낸 이도 있다. 그만큼 현대차가 CFO 출신들의 능력과 경험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1998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현대차 CFO 자리를 거쳐 간 인물은 총 8명이다. 재임 시 직급 기준으로 박완기 부사장과 김뇌명 부사장, 박완기 부사장(동일인), 이정대 부사장, 정태환 부사장, 이원희 사장, 최병철 부사장, 김상현 전무, 서강현 부사장 순으로 CFO를 맡았다.
◆계열사 대표로 간 3인 '박완기·김뇌명·최병철'
이 가운데 계열사 대표이사로 간 이는 박완기 부사장과 김뇌명 부사장, 최병철 부사장 등 3명이다. 박 부사장은 두 번째 임기를 마친 2002년 현대파워텍(2019년 현대트랜시스에 흡수 합병)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김뇌명 부사장은 사장 승진과 함께 2001년 기아 대표에 선임됐다. 김 부사장은 기아가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두 번째 대표였다. 그는 기아 대표로 재직한 약 2년간 회사가 현대차그룹에 안착하는 데 적지 않은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당시 기아 부사장이던 정의선 현 회장의 '멘토' 역할도 일부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병철 부사장은 2020년에 현대차증권 대표로 이동했다. 금융사를 계열사로 둔 재계그룹은 지주사격 회사의 CFO를 금융 계열사 CEO로 선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금조달 관련해서 다른 계열사와 협업할 일이 많은 금융 계열사의 역할이 지주사격 회사의 CFO 역할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빠른 40대에 전무로 승진하면서 화제를 모은 정태환 부사장은 2009년 현대모비스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옮겼다. 사내이사로도 선임되면서 그룹 지배구조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게 됐다. 단 2012년 현대모비스 부품영업본부장을 끝으로 그룹을 떠났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분이 회사를 떠나고, 회사를 곧 떠날 것만 같은 분이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잦다"고 전했다.
◆부회장까지 오른 '이정대'·CFO 출신 첫 현대차 CEO '이원희'
현대차 역대 CFO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진 인물은 이정대 부사장과 이원희 사장이다. 이 부사장은 사장 승진과 함께 그룹 '컨트롤 타워'격인 기획조정실의 실장으로 옮겼다. 이후 부회장까지 오르면서 'MK 사단'의 한축을 이루게 됐다. 과거 현대차 부회장단은 그룹 경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원희 사장은 CFO 이후 현대차 대표에 선임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차 경영을 총괄했다. 현대차 CFO 중 현대차 CEO에 선임된 이는 이 사장이 유일하다. 입사 이후 줄곧 재무 라인에서 경력을 쌓은 이 사장을 CEO에 내정한 건 현대차 역사에서도 이례적이었다.
현대차는 CEO엔 상대적으로 비재무라인 출신을 선호해온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오랫동안 현대차 CEO를 역임한 김동진 부회장과 양승석 사장, 김충호 사장 등은 영업과 생산 등 비재무 라인 출신이다. 현 장재훈 사장 또한 주로 기획과 마케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가장 최근에 CFO를 역임한 김상현 전무는 부사장 승진과 함께 2021년부터 현대차 원가혁신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직책에서 알 수 있듯 회사 수익성을 향상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다. 특히 현재 코로나19 확산과 인플레이션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어 원가 개선이라는 중책을 안은 그의 어깨가 무거울 것으로 판단된다.
◆'기획'으로 보폭 넓힌 서강현 CFO, 미래 행선지 '주목'
종합하면 CFO 출신들은 모두 그룹 내 핵심 자리로 이동했다. 이런 가운데 현직 CFO인 서강현 부사장의 행선지가 선배 CFO들과 어떤 차이를 보일지도 관심이다. 현대차 CFO 직책명은 그간 재경본부장 혹은 재무본부장 등이었으나 서 부사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앞에 '기획'이 붙어 기획재경본부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기획 능력은 100년간 지속된 탈내연기관 시대와 작별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 등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현대차 경영진엔 꼭 필요한 역량으로 꼽힌다.
앞선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근에는 기획과 전략 부문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인물을 CEO로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서 부사장은 사내이사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현대차 역대 CFO 가운데 CFO 재직 중 사내이사였던 인물은 서 부사장과 전임인 김상현 전무 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