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두 업권의 자타공인 1위 보험사이자 삼성 금융부문의 두 기둥이다. 이들은 2024년 각각 새 대표이사 선임을 통해 새로운 체제의 첫 해를 보내고 있다. 양 사의 첫 해 준비와 그에 따른 성적을 점검하고 내년 예상되는 보험업계 차원의 변화에 대비한 전략도 함께 가늠해 본다.
삼성생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명보험업권 전통의 사업영역인 종신보험(사망보장)을 위주로 보험계약마진(CSM)을 쌓았다. 그런데 올해는 신계약 CSM의 중심축이 건강보험으로 완전히 넘어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은 종신보험 대비 CSM 확보의 효율이 더 높다. 경쟁 심화로 업계 차원의 기대수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서도 삼성생명은 상대적으로 효율이 높은 쪽에 집중해 CSM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이 이같은 보험부문의 체질개선을 이끌고 있다.
◇건강보험 신계약 비중 확대, CSM 잔액 증가의 비결
삼성생명은 2024년 1~3분기 누적 기준 신계약 CSM이 2조480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10.5% 줄어들기는 했으나 업계에선 선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CSM 보유량의 증가세에 기인한다. 삼성생명은 3분기 말 기준 CSM 잔액이 전년 말보다 5.8% 늘어난 12조96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생보업계 빅3 가운데 삼성생명만 유일하게 CSM 보유량이 증가하면서 업계 1위의 자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2위 한화생명과의 격차는 3조8337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8000억원가량 더 벌어졌다.
CSM은 보험계약으로 발생한 보험부채 가운데 향후 기간별 상각을 통해 이익으로 전환되는 부분이다. 2위와의 CSM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은 앞으로 삼성생명과 추격자들 사이의 보험부문 실적 격차도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삼성생명의 신계약 CSM 구성은 크게 달라져 있다. 2023년 1~3분기 삼성생명은 신계약 CSM 2조7724억원 가운데 57.2%를 종신보험에서 확보했다. 반면 올 1~3분기에는 종신보험의 전체 신계약 CSM 대비 비중이 36.6%까지 낮아졌다. 대신 질병과 상해 등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의 비중이 33.9%에서 57%까지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은 종신보험 대비 수익성이 높다. 올 1~3분기 누적 기준으로 삼성생명은 보험계약 수익성 지표 중 하나인 신계약의 월초 납입보험료 대비 CSM 전환배수가 종신보험 8.2배, 건강보험 16.6배로 각각 집계됐다.
다만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의 신계약 CSM 전환배수는 종신보험이 12.6배, 건강보험이 26.7배였다. 이는 보험업계의 신계약 확보 경쟁이 올해 더욱 심화하면서 삼성생명도 수익성 악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도 삼성생명은 상대적으로 전환배수가 높은 건강보험 중심으로 보험부문의 체질을 개선하면서 신계약 CSM의 감소를 최대한 막아냈다.
◇홍원학 사장의 손보 이해도, 삼성생명 CSM 체질개선 기반
건강보험은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담보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생명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동시에 질병이나 상해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 '비용'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손해보험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처럼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보험을 '제3보험'이라고 한다.
제3보험은 생·손보 두 업권 모두 영업이 가능하다. 다만 전통적으로 손보사들이 강세를 보이는 영역이다. 2023년 보험연구원이 발간한 '제3보험시장의 경쟁 구도 및 평가'에 따르면 손보업계가 제3보험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보업계의 경우 과거에는 종신보험의 수익성이 제3보험보다 높았던 만큼 굳이 제3보험에서 경쟁할 이유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더 이상 늘지 않는 가운데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종신보험의 수요가 갈수록 감소하는 반면 생존기의 건장 보장을 원하는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는 생보사들 역시 제3보험을 주요 시장으로 여기고 있다.
올 3월 삼성생명 대표이사에 오른 홍원학 사장은 삼성생명 출신이면서도 2021년 12월부터 2년에 걸쳐 삼성화재 대표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손해보험업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생보사의 제3보험 공략 성과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삼성생명의 지휘봉을 잡기에는 최적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홍 사장은 삼성생명 대표이사에 내정됐던 2023년 12월 당시 '건강보험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2024년 사업전략을 내세웠다. 이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CPC(고객·상품·채널)전략실 산하에 시장대응팀을, 경영지원실 산하에 IFRS 손익관리파트를 각각 신설하기도 했다. CSM 확보에 유리한 시장을 겨냥한 뒤 집중적으로 공략해 첫 해부터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홍 사장의 전략은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인구 구조나 수익성의 비교우위를 고려하면 건강보험 집중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CSM 전환배수 하락의 우려가 있지만 상품 구조의 개선 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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