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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움직이는 경영 주체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한국 재계에 끊임없이 던져지는 주제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그리고 기업 외 인물들을 뜻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업 의사결정의 최고 결정자여야 한다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재계 대다수의 공감대다. 다만 1인 혹은 소수 중심의 재벌 기업집단 문화에 오랫동안 절여진 한국 재계에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는 여전히 막연한 '뜬구름'에 가깝다. THE CFO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집단이면서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지향하고 있는 SK의 이사회 경영과 거버넌스 시스템을 살펴보고 그들의 고민과 해결방안을 들어 봤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회사에 상주하지 않지만 의결권을 가지는 '기타비상무이사'가 있다. 기타비상무이사는 모회사 등 주주 회사에 속한 임원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업 내 인물이 아닌 '사외이사'가 있다.
상법에 따르면 2조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회사는 3명 이상, 그리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웬만한 계열사들의 이사회에는 사실상 사내이사보다 사외이사가 더 많다는 의미다. 상법 구조 상 사외이사들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기업의 주요 경영 안건의 실행 여부가 결정된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라면 이사회는 의미를 잃는 배경도 이런 데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SK그룹은 사외이사를 어떻게 규정하고,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Q. SK가 지향하는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A(채희석 담당)=이사회의 바람직한 역할과 관련해 딜로이트(Deloitte)와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 등이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2022~23년 사이에 연구한 자료가 있다. 이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업무 감시·감독(Oversight)와 중장기 전략 설정(Long-term Agenda)으로 요약된다. SK그룹도 이와 유사하게 사외이사의 역할을 설정한다.
A=업무 감독은 경영진이 경영 활동이 적법·적절할 수 있도록 사전·사후적으로 감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적 감독은 대체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윤리 경영 등 회사 내 각종 시스템과 보고 체계를 정비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법원은 사전적 업무 감독을 사외이사의 주요한 의무, 즉 '충실의무'로 본다. 만약 사외이사가 그 임무를 다 하지 못하면 미국 법원은 사외이사에 대해 대규모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최근 이런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보충설명) 채 담당의 말은 사실이다. 2022년 대우건설의 일이다. 당해 5월 대법원 민사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경제개혁연대와 대우건설 주주들이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관련 감시의무 위반을 이유로 사내·외 등기이사 등 10명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소송 사건(2021다279347)에서 사외이사들도 4650만원~1억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회사의 업무집행을 담당하지 않는 사외이사 등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는데도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을 촉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돼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등의 경우에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한편 사후적 업무 감독은 경영진이 내린 경영 판단의 적정성에 대한 사후적인 평가 작업을 뜻한다. 이를 통해 경영진이 더욱 면밀한 검토를 통해 경영 판단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글로벌 기업 역시 유사한 형태의 사후 업무 감독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A=중장기 전략 설정은 대체로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경영진의 경향을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SK그룹의 경우 1년에 두 차례 이상 경영진과 이사회가 참여하는 전략 회의를 개최해 중장기 전략에 관한 논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 대기업집단이 거대화하면서 오너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약점 중 하나는 '1인' 혹은 '소수'의 판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몸집이 커질 수록 고용되는 전문경영인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오너의 이해관계와 경영인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오너는 기업의 영속을, 전문경영인은 단기적 성과와 개인의 영달에 관심사가 있을 여지가 많다.
오너와 경영인의 이해관계가 갈라진 상황에서 경영인의 판단에 기업의 중장기 지속가능성이 저해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이사가 연임을 위해 무리한 M&A를 시도하다가 사내 현금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인수한 기업도 기대와 달리 부진할 경우 기업은 현재 재무상태가 악화하고 미래 지속가능성도 낮아진다. 이런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SK는 '이사회'를 내걸고 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 결국 '재벌', '오너'에게도 좋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A=경영진과 이사회는 현안에 대해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할 수 있다. 경영진의 경우 불가피하게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고민과 접근을 독려하는 단위가 필요하다. 이러한 단위로 이사회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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