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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 이사회 중심 경영을 묻다

'같이 또 따로'가 아닌 '따로 또 같이'인 이유

③오너·그룹 이해관계보다 주주 먼저, 거수기 거부…투자 무산시키기도

박기수 기자  2024-11-27 07:11:20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경영 주체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한국 재계에 끊임없이 던져지는 주제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그리고 기업 외 인물들을 뜻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업 의사결정의 최고 결정자여야 한다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재계 대다수의 공감대다. 다만 1인 혹은 소수 중심의 재벌 기업집단 문화에 오랫동안 절여진 한국 재계에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는 여전히 막연한 '뜬구름'에 가깝다. THE CFO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집단이면서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지향하고 있는 SK의 이사회 경영과 거버넌스 시스템을 살펴보고 그들의 고민과 해결방안을 들어 봤다.
SK그룹의 계열사는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받는다. 또 이 계열사들은 자발적으로 SK'그룹'이라는 가치창출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개별 기업이 창출하기 힘든 가치를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다. SK그룹이 내세우는 '따로 또 같이'의 원리다.

여기서 혹자는 의문점을 제기한다. '따로 또 같이'라는 개념과 운영 원리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취지에 맞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개별 기업들이 독립적인 경영 활동을 보장받는 지는 알 수 없다는 반론이다.

이 같은 의문은 SK그룹도 엄연히 오너 경영인이 존재하는 재벌 기업집단이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SK는 오너가 스스로 독립적인 이사회 경영을 주장하지만 그들도 오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 속에서 성장해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따로 또 같이'가 어떨 때는 그룹의 이해관계가 우선시되는 '같이 또 따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들은 생태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 생태계는 '연합'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연합의 가이드라인은 오너인 최태원 회장에 의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SK그룹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와 관련해 채희석 SK SUPEX추구협의회 Governance 지원담당과 질답을 나눴다.

Q. SK의 '따로 또 같이' 시스템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위한 SK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게 얼핏 맹점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예컨대 개별 회사들이 회사의 주주들을 최우선하는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같이'가 우선시 될 경우 그룹의 이해를 위해 회사의 이해를 희생하는 경우도 있을 듯 하다. '따로 또 같이'가 아니라 '같이 또 따로'가 될 수도 있지 않나. SK의 경우, 오너나 그룹의 이해관계에 반하고 일반 주주들의 이해에 호응하는 상황에서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에 우선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A(채희석 담당)=이사회가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의사 결정 기관으로서 기능하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측면에서 SK그룹 소속 멤버사(계열사)의 이사회는 실질적으로 독립적으로 의사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경영진이 내세운 안건에 대해 이사회에 만연히 동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사회에서 철저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실무진이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보충설명)이사회 개최 횟수를 보면 알 수 있는데, 2020년 그룹 평균 27회였던 이사회 활동이 Governance Story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후인 2023년 41회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일하는 이사회 문화가 확산했고 사외이사들 사이에서는 SK의 이사회가 '하드코어'라는 얘기도 농담처럼 돈다. (오너나 그룹의 이해보다 멤버사 일반주주의 이해를 우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특정 안건이 이사회에서 부결되거나 이사회 부결에 앞서 경영진이 해당 안건을 자진 철회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오너'로 대변되는 그룹의 의사가 꺾인 사례는 적지 않다. 단적으로 2021년 SK는 2021년 8월 'H사' 투자 안건에 대해 의결했는데 최태원 회장(SK 대표이사)은 이에 반대했지만 이사회 통과로 투자 안건이 통과됐다. 2022년 초에는 실적 부진으로 배당을 지급하지 않으려 했던 SK이노베이션이 이사회 반대로 배당을 지급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주주들에게 보통·우선주 1주당 자기주식 0.011주를 배당하기로 했다.

계열사 내부에서 경영진의 의지가 꺾인 적도 적지 않다. 2021년 9월 SKC의 넥시온 투자 안건이 이사회에 의해 부결됐고(이는 두 달 뒤 다시 통과됐다), 2021년 11월 SK네트웍스는 1조1000억원에 매트리스 제조 업체인 '지누스'의 지분 40%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이사회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지누스는 올해 3분기 누적 21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이사회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SK그룹의 이사회가 '거수기'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 사례를 통해 검증된 것처럼 보인다. SK는 몇 년 전부터 '같이 또 따로'가 아닌, '따로 또 같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는 셈이다.


Q. 국내 재계가 이사회 중심 경영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그룹마다 사정이 달라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배구조 이슈가 이른바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이슈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 지를 고민하고 각 그룹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지배구조 이슈가 특정 개별 기업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특정 회사 차원의 이슈와 함께 그룹 차원에서의 이슈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해외에서는 사례가 많지 않아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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