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국내 주요 기업 C레벨 자리 앞엔 금녀(禁女)의 벽이 서 있다. 대외적으로 기업의 얼굴 역할을 하는 CEO 자리도 많이 개선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진출을 막는 옹벽이 둘러쳐 있다.
CEO를 향하는 관문으로 꼽히는 C레벨 요직인 CFO는 어떨까.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0개 국내 기업 가운데 여성 CFO는 LG유플러스와 OCI홀딩스에 단 두 명 뿐이다. 재무책임자 풀(Pool)을 통틀어도 7명 뿐이었다. CEO 자리보다 CFO 자리는 더 여성에게 엄격하며 진입 또한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여성 재무책임자 전체의 2% 불과… 'CEO보다 적다' THE CFO는 올해 2024년 11월 15일 기준말 기준 시총 상위 300개 기업의 CFO와 신고업무담당임원을 분석했다. 먼저 △우선주·리츠 등 상장종목을 제외하고 △분기보고서 제출기한에 맞춰 자료를 제출한 코스피 상장사를 추렸다.
이어 △각 기업에서 재무총괄업무를 겸직하는 인물이 중복된 사례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CFO가 없거나 공개하지 않은 기업일 경우 재무책임자로서 신고업무담당임원을 포함시켰다. 그 결과 해당 기업에서 CFO와 신고업무를 담당하는 모든 임원은 총 355명이었다.
이에 따라 산출한 코스피 시가총액 300위 기업 재무책임자의 풀(Pool)을 살펴봤다. 그 결과 전체 재무책임자 355명 가운데 성별이 여성인 임원은 도합 7명이었다. 코스피 시총 300위 기업의 CFO를 포함한 재무책임자 풀 가운데 여성임원의 비중은 채 2%에도 미치지 못했다.
범위를 국내 500대 기업으로 넓혔을 때 전체 여성임원이 약 7.9%에 달하는 점을 고려해도 박한 수치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되면서 과거보다 중요도가 높아진 CFO 직책에서부터 여성임원들은 승진 병목현상을 겪는단 뜻이다.
코스피 상위 300개 기업에선 여성 CEO보다 여성 CFO 비율이 오히려 더 낮았다. 2024년 11월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300개 기업 중 여성 CEO를 선임한 기업은 총 7곳, 비율은 3.5%였다. 각각 △네이버(최수연) △카카오(정신아) △LG생활건강(이정애) △호텔신라(이부진) △한국가스공사(최연혜) △매일유업(김선희) △한샘(김유진) 대표 등이다.
이밖에 코스피 시총 상위 300개 기업의 여성 재무책임자 가운데 절반은 회계학을 전공했고 나머지는 경영학도였다. 직급은 상무보부터 부사장에 걸쳐 있었으며 대부분이 자사주를 약간이나마 보유하고 있었다.
◇'여성 등기 CFO' 여명희 LG유플러스 전무뿐… '조직혁신 선언' OCI홀딩스도 변화 통상 기업에서 CFO의 역할은 현금흐름을 포함한 재무회계 관리, 자본조달, 기업공시 및 IR, 내부통제 및 리스크관리 보조 업무 등으로 요약된다. 과거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CFO는 회사의 재무를 관리하는 곳간지기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업무 범위도 다양해지고 그에 책임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국내 주요 기업 여성 CFO 가운데 등기임원으로 CFO 직책을 온전히 소화하고 있는 인물은 여명희 LG유플러스 전무(
사진)밖에 없었다. 여 전무는 CFO이면서 신고업무담당임원도 직접 맡고 있으며 등기임원이자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 업무까지 겸하고 있다.
여 전무는 1989년 LG유플러스 전신인 데이콤 시절 유일한 여성 합격자이자 LG그룹내 유일한 여성 CFO다. 성별을 떠나 본인의 역량을 통해 데이콤 입사 후 LG 인수 후에도 재무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았다.
애초에 코스피 시총 상위 300개 기업 가운데서 CFO 또는 신고업무담당임원이 등기임원인 비율 자체가 남녀 성별을 떠나 전체의 23%로 낮다. 이를 고려할 때 여 전무는 여성 CFO로서 역량을 입증하면서 LG유플러스의 재무관리와 공시 및 투자자 소통 그리고 위험관리에 걸친 역할까지 충실하게 소화하게 된 셈이다.
여 전무는 CFO 부임 이후 안정적으로 재무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올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비율과 차입금의존도로 각각 71.4%, 38.2%를 기록 중이다. 여 전무가 CFO로 부임할 당시인 2022년 말(순차입금비율 73%, 차입금의존도 35.6%)과 비슷한 수준이다.
조직개편을 통한 반등의 기로에 선 OCI홀딩스는 그룹사 처음으로 여성 CFO를 선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올 3분기 시장 컨센서스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어닝쇼크'를 겪은만큼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고강도 혁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OCI그룹은 올해 11월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거쳐 OCI 소속이던 이수미 전무를 그룹 지주사의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CFO로 보임시켰다. OCI그룹이 공채 출신의 여성 부사장을 배출한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고 전사 CFO를 여성이 맡은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이밖에 중국 유안타금융그룹의 계열사 유안타증권은 2명의 남녀 CFO를 앞세웠다. 여기에 신고업무담당임원을 포함하면 CFO역할을 모두 3명의 임원이 나눠서 수행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과는 문화가 다른 데서 택할수 있었던 인사·재무 전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