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SM그룹 산하 비상장 계열사 SM하이플러스는 '자금 이동'이 활발한 기업이다. 안정적 현금 동원력을 발판 삼아 배터리 신사업 계열사 SM벡셀 주식을 계속 사들였다. 최근에는 대한해운 지분을 SM상선에 넘겨 1000억원 넘는 현금도 확보했다.
계열사간 거래 행위가 잦지만 이사회 인적구성을 살피면 내부거래를 제3자 시각에서 감독하는 기능이 약하다. 그룹 오너 우오현 회장과 2세 우기원 대표가 나란히 이사진으로 등기돼 있기 때문이다. 창업주의 셋째딸 우명아 SM그룹 구매실장은 13년째 SM하이플러스 감사를 맡고 있다.
◇'오너 2세' 우기원 대표 취임 사내 이사 중심 이사회 SM하이플러스는 2007년에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선불 전자카드(하이패스) 통행료 정산 업무를 부여하는 취지에서 설립했다. 이후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며 매각하자 SM그룹이 2011년 인수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매출 2620억원 대비 13.1% 규모인 344억원의 순이익을 시현하는 등 실적이 계속 순항하는 모양새다.
계열 편입 이래 SM하이플러스는 사세를 계속 키웠다. 2015년 경북 김천에서 애플밸리 컨트리클럽을 관리하는 삼라네트웍스를 합병하며 첫 발을 뗐다. 2018년에 대원건설산업을 흡수하고 2020년 탑스텐 리조트 운영에 주력하는 동강시스타를 종속기업으로 편입했다. 대한해운 인수를 염두에 두고 출범했던 특수목적법인(SPC) 케이엘홀딩스이호와 제주도에 자리잡은 계열사 플러스매니지먼트 역시 합병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SM하이플러스의 최대주주는 SM스틸로 전체 주식의 54.4%(158만4273주)를 소유하고 있다. 그룹 창업주 우오현 회장이 SM스틸 지분 39.45%를 가진 만큼 '우 회장→SM스틸→SM하이플러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이외에도 △TK케미칼(34.1%) △삼라(4.3%) △SM인더스트리(4.1%) △남선홀딩스(3.1%) 등의 계열사가 SM하이플러스 지분을 보유 중이다.
현재 SM하이플러스 경영을 총괄하는 인물이 '오너 2세' 우기원 대표로 올 1월에 취임했다. 1992년생으로 우 회장의 외아들이자 배우자 고 김혜란 여사가 낳은 남매 중 막내다. 2017년 분양 대행사 라도(RADO) 수장을 맡으며 22세 나이로 그룹 계열사 경영에 처음 참여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등기임원 면면을 살피면 우 대표를 포함해 창업주 일가 인사가 3인 존재한다. 우 회장은 2011년 인수 이래 13년 넘게 기타비상무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사회 업무와 경영 실태를 감독하는 역할이 부여된 상근감사 역시 오너 일가의 몫이다. 우명아 SM그룹 구매실장이 2013년 11월에 취임한 이후 11년째 감사직을 유지해 왔다. 우 실장은 우 회장 슬하 1남 4녀 가운데 셋째딸로 경영 컨설팅 회사 신화디앤디 대표를 겸하고 있다.
◇SM벡셀 지분매수, SM상선 차입 안건 모두 '가결' 지난해 1월 기타비상무이사로 부임한 최승석 SM스틸 대표 겸 SM그룹 부회장도 창업주 일가와 연이 깊은 인물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 공시에서 우 회장의 '인척 3촌'으로 분류된 대목이 방증한다. 최 부회장은 1960년생으로 1990년 이래 2013년까지 LG화학에서 근무한 이력을 지녔다. 2019년 SM그룹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당국 규제 대처와 계열사 업무 조정 등을 담당했다.
SM하이플러스 이사회 일원과 상근감사가 모두 오너 친·인척으로 채워진 건 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특수성과 맞물려 있다. 올 5월 말 기준으로 SM하이플러스는 △SM화진 △SM중공업 등 11개사 주식을 소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차량 배터리 제조사 SM벡셀의 경우 2022년 출범 당시만 해도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는 삼라마이다스 지분율이 단연 높았으나 SM하이플러스가 꾸준히 장내 지분을 매수하며 최대주주로 오르기도 했다.
계열사간 자금 거래가 활발한 만큼 의안 심의부터 의결까지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취지가 창업주 가문이 이사회를 주도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공정위 공시에 따르면 우 대표가 취임한 올 1월부터 4월까지 SM하이플러스 이사회에 상정된 의안은 5건이 존재한다. △태초이앤씨 자금 대여 △SM벡셀 주식 매입 △SM상선 자금 차입 등의 안건이 올랐는데 모두 원안 가결됐다.
지난달에는 SM하이플러스가 계열사 대한해운 주식 5322만주(16.7%)를 SM상선에 팔았다. 매도를 계기로 SM하이플러스에 유입된 현금이 1276억원이다. SM상선의 대출금 상환채무를 상계하는 동시에 선불충전을 둘러싼 충당금을 보강하는 취지가 반영된 거래였다. 지분 거래와 맞물려 대한해운 최대주주는 SM하이플러스에서 SM상선으로 바뀌었다.
더벨은 SM하이플러스가 내부거래를 둘러싼 대한 심의, 감독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질의했으나 SM그룹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과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