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온시스템 경영권 인수는 한국앤컴퍼니그룹으로서는 확실한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1조8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현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경영권 인수자금을 책임질 주체로 지주사 한국앤컴퍼니가 아닌 핵심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를 내세웠다.
한국타이어는 우수한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말 연결 기준 3조원 가까운 현금을 손에 쥐고 있다. 당장 인수자금을 충당하기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앤컴퍼니는 한국타이어에 대한 낮은 지배력 탓에 출범 때부터 '작은 지주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온시스템 인수 전면에 한국타이어…현금창출력 바탕 한국앤컴퍼니가 지주사로 전환한 것은 2012년 9월이다. 한국앤컴퍼니에서 타이어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한국타이어를 신설하고 투자사업부문만 남겨 지주사로 탈바꿈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이 한온시스템 지분을 처음 취득한 것은 지주사 전환 이후인 2015년 6월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한온시스템 경영권 지분 50.50%를 인수할 때 공동 참여해 1조617억원을 들여 지분율 19.49%로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이 한온시스템 지분 인수주체로 내세운 곳은 지주사 한국앤컴퍼니가 아닌 핵심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였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올해 5월 한앤컴퍼니와 한온시스템 경영권 지분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이번에도 한국타이어를 내세웠다. 지난달 확정된 인수조건을 보면 한국타이어가 한앤컴퍼니 보유지분 중 일부(1억2277만4000주)를 1조2277억원에 사들이는 동시에 한온시스템 유상증자에 6000억원을 투입한다. 결과적으로 한국타이어는 1조8277억원을 들여 한온시스템 경영권 지분 54.77%를 손에 쥔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이 한온시스템 경영권 인수에 지주사 한국앤컴퍼니가 아닌 핵심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를 내세운 이유는 지주사로 전환한 지 10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 한국타이어가 여전히 그룹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룹 오너인 조현범 회장이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에 동시에 소속돼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다만 조 회장은 한국앤컴퍼니에서는 대표이사(사내이사)인 반면 한국타이어에서는 미등기임원으로서 회장직만 맡고 있다. 등기이사가 아님에도 실질적으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다.
한국타이어가 그룹의 중심인 이유는 현금여력에서 알 수 있다. 한국타이어는 현금창출력의 근간이 되는 연결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지난해 1조8000억원을 넘겼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1조원을 달성했다. 미국, 중국, 헝가리 등 해외에 제조법인과 판매법인을 넓게 확보하고 있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말 현금성자산이 2조9639억원에 이르러 당장 한온시스템 경영권 지분 인수자금 충당만 고려하면 문제가 없을 정도다.
◇한국앤컴퍼니 부족한 현금여력…한국타이어 낮은 지배력 한계 한국앤컴퍼니의 경우 별도 기준 EBITDA를 보면 지난해 1346억원, 올해 상반기 1118억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말 현금성자산이 2869억원으로 당장 현금여력이 부족하다. 자회사에 제공하고 있는 대여금도 ES사업 관련 미국법인(Hankook & Company ES America)에 대한 1042억원뿐이다.
물론 한국앤컴퍼니가 신규 자회사 경영권 지분 인수에 직접 현금을 투입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2월 캐나다 초소형 정밀전자기계 제조회사 PMC(Preciseley Microtechnology Corporation) 지분 34.28% 인수에 1036억원을 투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때도 한국타이어가 690억원을 출자해 지분 22.86%를 확보한 덕분에 PMC에 대한 한국앤컴퍼니그룹의 합산 지분율이 절반을 넘을 수 있었다.
한국앤컴퍼니는 상표권 사용료, 임대료, 배당금수익을 벌어들이는 지주부문 외에 자동차용·산업용 축전지를 제조하는 ES사업본부를 자체 사업으로 보유하고 있다. 다만 ES사업본부가 사업부문인 만큼 영업비용도 그만큼 발생한다.
한국앤컴퍼니의 현금여력이 부족한 이유는 지주사임에도 지주부문에서의 매출액(영업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벌어들인 상표권수익(439억원), 임대수익(83억원), 배당금수익(304억원)을 합하면 826억원이었다. 2022년의 경우 상표권수익(412억원), 임대수익(80억원), 배당금수익(266억원)을 합한 759억원이었다.
지주부문에서의 매출액이 적은 이유는 그룹 캐시카우이자 자회사인 한국타이어에 대한 지배력이 낮은 탓이다. 한국앤컴퍼니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외에 ES사업 관련 미국법인과 독일법인(Hankook & Company ES Deutschland), 한국컴피티션, 한국카앤라이프, 한국네트웍스 등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지만 배당금을 끌어올리는 곳은 한국타이어가 유일하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에 대한 지분율은 30.67%에 불과하다. 한국타이어가 배당을 실시해도 비지배주주로의 유출이 많다. 상표권 사용료율이 0.5%로 다른 기업집단에 비해 높은 것도 낮은 지배력의 한계를 타개하려는 이유가 크다. 상표권 사용료는 자회사가 아닌 계열사로부터도 끌어올 수 있으며 지배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한국앤컴퍼니는 상표권 사용료도 한국타이어로부터만 수취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타이어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