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BC카드 대표(사진)는 '최초' 수식어 부자다. 카드업계 최초로 사외이사 출신에서 대표 자리로 직행한데다 데이터 사업 인허가 4종을 싹쓸이했다. 여전히 카드업계에서 이름 대신 닉네임을 쓰는 곳은 BC카드가 유일하다. 당장 최 대표부터가 본인 이름에서 따온 '원스틴(Onestein)' 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볼 법한 영어 닉네임과 정장 안 입는 문화를 BC카드에 이식했다.
KT라는 다소 보수적인 국가기간사업체를 모기업으로 둔 금융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감한 시도다. 최 대표는 KT 대표가 바뀌는 동안에도 올해로 세 번째 임기를 거치고 있다. 연말 임기 만료를 맞는 최 대표가 3연임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경영 감시자'에서 최고경영자로 최 대표는 지난 2021년부터 4년째 BC카드를 이끌고 있다. 취임 당시부터 깜짝 인사로 주목을 받았다.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사외이사 자리에서 경영 최일선을 이끄는 대표 자리에 앉으면서다. 통상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들은 은행이나 보험에서 내려온 이들로 대표를 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업계의 경우에도 모기업 출신 인물들이 대표로 오는 탓에 '낙하산' 불만이 끊이지 않은 터다.
2017년부터 줄곧 KT 출신들이 대표로 왔던 BC카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 대표의 등장으로 BC카드에도 쇄신 기류가 생겨났다. 최 대표는 KT 대표가 구현모 전 대표에서 김영섭 대표로 바뀐 지난해에도 연임에 성공하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룹사 대표 인사가 이뤄지면 '새 술은 새 부대' 원칙에 따라 자회사 사장단도 교체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김영섭 KT 대표가 최 대표를 유임시키며 신뢰를 보였다.
◇"최원석 체제 BC카드, KT 입장에선 '알아서 잘 하는 자회사'" 이번에도 KT가 같은 선택에 나설 지가 업계의 초점이다. 최 대표의 3연임을 점치는 쪽은 최 대표야말로 KT의 자회사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유일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실제 BC카드는 여타 카드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여기에는 에프앤자산평가 출신으로 금융회사에 데이터 DNA를 접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최 대표의 역할이 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KT는 BC카드를 통신과 끈끈하게 결부된 금융회사로 키우려 하고 있지만 은행적 관점에서 이를 바라본 사람들은 그 과제를 풀어내지 못했다"며 "KT 입장에서 최원석 대표 체제에서의 BC카드는 KT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자회사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최 대표 체제에서 BC카드는 데이터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국내 금융사 중 유일하게 데이터 사업 관련 핵심 인허가 4종을 모두 획득하면서다. 2021년 금융위원회 선정 데이터 전문기관 본허가를 시작으로 개인사업자 신용평가(CB) 본허가,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가명정보 결합전문기관에 지정됐다.
4대 면허를 보유함으로써 BC카드는 결제와 연체 등 금융 데이터에 통신과 쇼핑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최 대표의 3연임 명분이 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금융과 데이터를 결합한 카드사로서 포석을 마련한 만큼 이에 기반한 실적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C카드는 고도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제공할 것이란 계획이다. 금리인하 등 직접적인 혜택을 부여해 최 대표 취임과 동시에 추진한 자체카드 사업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데이터 전문 카드사로서의 청사진을 성공적으로 제시한 데 이어 실적 개선도 나타나고 있다. BC카드는 올 들어 상반기 순이익만 999억원을 기록하며 이미 지난해 순이익(755억원)을 넘어섰다. 기존 영업수익의 80%가량을 차지했던 매입업무 수익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다각화한 영향이다.
또 최 대표 체제 아래 BC카드는 올 1월 고트(GOAT) 카드를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해당 카드는 출시 직후부터 카드정보 공유 카페 등에서 입소문이 몰리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소통 리더십' 바탕으로 3연임 성공할까 최 대표는 꼼꼼한 성격과 소통에 능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본인이 주목받기보다는 실무진들이 빛나게 두는 스타일이다. 취임하자마자 닉네임을 부르는 호칭 실험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최 대표의 닉네임 ‘원스틴’은 이름인 '원석'에서 'One(원)'과 독일어 'stein'(돌)를 합쳤다. 출근 복장도 금융인의 상징인 정장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직 문화가 공무원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KT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공채 문화가 강했던 BC카드는 최 대표 체제에서 경력직 채용을 늘리며 외부 수혈에 나서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 대표는 1999년에는 삼성증권에서, 이미 채권평가사가 레드오션이었던 2011년에도 에프앤자산평가에서 일하는 등 경쟁이 치열한 조직을 거쳐 오지 않았나"라며 "치열한 곳을 거쳐 온 만큼 나 혼자 끌고 가기보다는 함께 협력하는 스킬에 능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BC카드를 데이터 전문 카드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하며 실적 개선을 이끌어냈다. 이런 성과와 리더십을 감안할 때 올 연말에도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KT 그룹 대표 인사와 향후 BC카드가 데이터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