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거버넌스 핵심 조직은 이사회다. 이사회 역할은 경영진과 소유주에 대한 감독과 견제다. 이사회 안에서도 사외이사들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업들은 각 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 자기 분야에서 각자 경지에 오른 전문가들로 하여금 경영진들에게 최고 수준의 질문을 던지게 함으로써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싶어한다.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하는 조직은 기업마다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상장사는 이사회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외부 기관 추천에 적극적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헤드헌팅 서치펌이다. 더벨은 12일 사외이사 헤드헌팅에 특화된 유니코써치의 박신연 전무(
사진)를 인터뷰했다. 박 전무는 유니코써치에서 국내 대기업의 경영진과 사외이사 채용을 전담하고 있다.
박 전무는 이화여대에서 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 오라클을 거쳐 영국 외환은행과 옥스포드대 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박 전무는 기업들의 이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사외이사 인재풀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사회 명망가들이 단골 후보였다면 지금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 수요 위주의 사외이사 시장…"기업 눈 높아졌다" 박 전무의 역할은 기업의 사외이사 수요에 맞춰 후보들을 물색해 추천하는 일이다. 박 전무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은 그간 사외이사 선임을 대관업무 일환으로 여기고 사회 저명인사를 집중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했지만 이사회 기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각 세부 영역 전문가들을 영입하려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기업들이 BSM(이사회 역량 현황표) 등을 공개하는 등 이사진 개개인의 능력을 적극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이사진 간 능력치 밸런스 등을 사외이사 영입 과정에서 고려하는 시도도 최근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ESG 역량 강화를 제창하면서 이사진 성별과 연령, 국적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박 전무는 "장·차관 출신 등 명망가 위주에서 우주항공 등과 같은 이색 분야 커리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위주로 기업 선호도가 변하고 있다"면서 "유니코써치가 30년 이상의 이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네트워크만으로는 부족해 포럼 등과 제3 기관 협력 등을 통해 인재풀을 확대하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 기업이나 훌륭한 커리어의 사외이사를 모시고 싶어 하지만 인재풀 자체가 워낙 좁은 탓에 특정 인사에게 러브콜이 쏠려 막판 조율 단계에서 퇴짜를 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글로벌 경영 이력을 가진 외국인과 30~40대 연령대 후보를 찾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들 후보군의 경우 더 좁게 형성돼 있어 영입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하다.
그렇다 보니 현직 종사 이력은 없지만 특정 분야에 정통한 교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교수직 후보의 경우 다른 후보에 비해 이해충돌 저촉 가능성이 비교적 낮기도 하다. 박 전무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외이사 희망자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직을 고사하는 분들께 요청을 드리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독립성 강화 차원 서치펌 역할 주목…객관성 확보 장점 이런 과정에서 외부 서치펌 역할이 커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과정에서 투명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추위 위원들이 직접 후보를 추천키도 하지만 많은 경우 복수의 서치펌을 통해 롱리스트를 만들곤 한다.
가령 한 기업이 경제와 회계, 법률 등 각 분야에서 10명의 전문가 후보 리스트를 달라고 하면 카테고리에 맞춰 30명으로 구성된 롱리스트를 작성해 제공하고 사추위가 한 달 정도 해당 롱리스트를 검토한 뒤 후보를 정하는 식이다. 통계적으로 서치펌 추천후보가 이사회 자체 추천 후보보다 영입될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박 전무 주장이다.
박 전무는 "기업 이사회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는 만큼 최소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치펌 후보를 선호한 결과인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요즈음에는 노동조합 측에서 이사를 추천하는 등 이사진 추천 경로가 다양해졌는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모두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객관성 측면에서 투명성을 갖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이 정치해지면서 서치펌의 대외협력 기능도 확대돼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기도 하다. 지금도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같은 대형 기관 관계자들과 협력해 인재풀을 구축하고 있지만 다양한 학회와 해외 네트워크 등을 통해 더 다양한 후보군을 확보해 기업 이사회에 유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니코써치도 지난달 한국딜로이트그룹과 사외이사 인재풀 확보와 추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등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박 전무는 "단순히 후보를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외이사 교육과 양성 분야까지 업무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이라면서 "기업 이사회 역량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