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꺼낼 수 없지만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쉽게 '대세'가 되진 않았다. 어떤 곳은 여러 번의 '빅 딜' 후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또다른 곳은 적자만 냈지만 기업공개(IPO)의 적기를 제대로 잡아 그룹의 대표 주자에 올랐다. 모든 성장 전략이 다 달랐지만, 어느새 그룹에서도 가장 커져버린 시가총액이 이들의 성공과 새 시대를 주목하게 만든다. 더벨이 갖은 노력 끝에 시장을 사로잡은 주요 그룹 간판 계열사의 시총 그 뒷배경을 들여다본다.
SK그룹의 성장사를 언급할 때 과감한 인수·합병(M&A)과 독립 경영 체제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전신인 선경그룹 시절부터 유공(현 SK이노베이션)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지금의 석유화학·소재,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2010년대 들어서는 하이닉스 인수로 반도체 사업을 3대 사업축으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산업 확대가 예상되는 사업부를 분할해 독자적인 경영 체계를 확립하도록 하는 등 SK그룹 특유의 성장 전략을 수립했다.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가 그룹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은 과거 성장 방정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지만, 해당 전략이 SK그룹을 재계 2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룹 시가총액을 떠받치는 기업도 과거 합병·분할 전략에 따라 일부 변화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이 그룹 시가총액의 중추 역할을 하다 SK하이닉스가 그룹 시총 1위 자리를 꿰찼다. 시간이 지날수록 SK하이닉스와 다른 계열사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고 지금은 시총 10조원대의 2위권 계열사와 10배 이상의 기업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정유·텔레콤→반도체, 그룹 시총 움직였다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SK그룹 계열사는 총 21곳이다. 이중 8곳이 최근 5년 사이 설립되거나 피인수되며 SK그룹에 계열사로 상장한 회사들이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올해 3월 SK디앤디로부터 인적분할해 코스피 시장에 재상장한 SK이터닉스와 지난해 SKC에 인수된 ISC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현재 SK그룹 상장 계열사로 이름을 올린 곳 가운데 시총 10조원 선을 지키고 있는 곳은 5곳뿐이다. SK하이닉스(4월23일 기준 시총 124조4884억원)가 단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10조~11조원대의 시총을 유지 중인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스퀘어 등이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SK바이오팜(2020년), SK바이오사이언스·SK아이이이테크놀로지(2021년) 등도 상장 첫해 시총 10조원대를 기록하긴 했으나 지금은 4조~6조원대까지 내려온 상태다.
그룹 시총 부동의 1위로 평가받는 SK하이닉스가 편입되기 전까지 그룹 시총을 떠받치던 회사는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이다. 안정적인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정유·석유화학, 통신 분야에서 각자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던 회사인 만큼 양사 기업가치 역시 무난히 10조원대 이상으로 형성돼 있었다.
'주인 없는 회사'였던 하이닉스가 부침을 겪던 2000년대 후반에는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의 시총이 하이닉스보다 높았던 적도 있다.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직전인 2009~2011년 하이닉스 시총은 12조~14조원대에 형성됐던 반면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말 시총이 18조원에 육박했고, SK텔레콤도 13조~14조원대의 시총을 유지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2012년 SK텔레콤에 인수된 뒤 단번에 그룹 시총 1위 자리를 꿰차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대 본격적인 반도체 호황기를 맞으며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도 천정부지로 뛰었고 엎치락뒤치락하던 3사 시총 추이는 SK하이닉스 독주 체제로 바뀌었다.
2012년 영업적자(-2273억원)를 내던 SK하이닉스는 이듬해(3조3798억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2018년 영업이익 2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SK그룹 편입 직전인 2011년 말 12조9981억원이었던 SK하이닉스의 시총은 2018년 말 44조원까지 뛰었다.
◇적자 '쇼크' 이겨낸 하이닉스, 그룹사 시총 2위 복귀
고공행진하던 SK하이닉스의 시총은 2022년 한차례 고꾸라졌다. 2021년 말 95조원대였던 시총이 이듬해 말 54조원으로 절반가량 깎인 것으로, 반도체 혹한기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단 한번의 적자도 내지 않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7조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이는 SK그룹 전체가 위기의식을 갖는 계기가 됐다.
다만 인공지능(AI) 서버 수요를 발판 삼아 반도체 시장에 온기가 돌며 SK하이닉스 주가도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초 7만5700원(시총 55조1098억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연말까지 지속해서 오르며 14만1500원으로 한해를 마무리했다. 시총 역시 100조원대를 회복했고 그 흐름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SK하이닉스의 시총은 30조원가량 불어나며 일부 계열사의 부진을 만회했고 SK그룹은 LG그룹을 제치고 그룹사 시총 2위 자리를 탈환했다. LG그룹이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그룹사 시총 2위 자리를 가져간 지 약 2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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