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을 받치고 있었던 '기둥' 석유화학 사업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작년 일부 공장 철수에 이어 나프타분해시설(NCC)과 추가 석유화학 라인 철수설이 돌고 있다. 2022년까지는 양호했던 석유화학 관련 재무 지표들도 작년 기점으로 일제히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회전율은 50%대까지, 공장가동률은 70%까지 하락했다. LG화학이 본격적인 가동을 한 뒤 자산회전율이 50%대까지 내려간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전대미문으로 악화된 석유화학 부문 경기를 보여주는 시그널이란 해석이다.
◇작년 자산회전율·공장가동률 '뚝' 2018년 이후 LG화학의 별도 기준 자산회전율은 매년 하락해왔다. 자산회전율은 기업의 자산총액 대비 매출액으로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 지 보여주는 지표다. LG화학의 2018년 자산회전율은 104%. 이듬해 88%를 기록했다가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산회전율이 70%대로 하락했다.
다만 이는 LG화학의 신규 유형자산 등 초기 자본적지출(CAPEX) 확보 과정에 따라 지표가 일부 낮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별도' LG화학에서 가장 많은 사업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화학 사업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자산회전율이 70%대로 하락했던 때에도 90%대를 유지했다. 석유화학 사업부문이 뽑아내는 영업이익 규모도 상당했다.
다만 작년은 LG화학의 자산회전율과 석유화학 사업 부문의 공장 가동률, 그리고 실제 석유화학 사업 부문이 뽑아낸 영업손익 모두가 일제히 악화했다.
작년 LG화학의 자산회전율은 59.6%까지 뚝 떨어졌다. 석유화학 사업 부문의 공장 가동률도 작년 3분기 말 기준 75.3%로 2021년 91.9%, 2022년 81.4% 대비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작년 6월 대산 스티렌모노머(SM) 라인 철수에 이어 최근 소식이 알려진 여수 SM공장, 에틸렌옥시드(EO), 에틸렌글리콜(EG) 공장 라인 축소까지 현실화하면 공장 가동률과 CAPEX 회전율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석유화학 사업의 가장 기본이자 밸류체인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나프타분해시설(NCC)에 대한 매각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년 LG화학 석유화학 사업은 약 144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0·2021·2022년 각각 1조9364억원, 4조815억원, 1조74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중국 자급률 100%인데 정유사까지…설 곳 좁아진다 석유화학은 '싸이클' 산업이라는 말이 있다. 빙하기가 지나면 다시 좋은 때가 오고, 좋은 때가 지나면 다시 침체기가 오는 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그러나 최근 업계는 다시 '좋을 때가 올 지'에 대해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주요 수요처였던 중국이 자체적으로 수요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범용 화학 제품 시장의 공급과잉이 구조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학사들의 물량을 대거 받아주던 중국이 기초화학 제품 자급률이 이제 100%에 이르렀기 때문에 초과공급 상황이 비교적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에틸렌과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석유화학 사업의 기초 제품들에 대한 중국 내 자급률은 100%를 초과한 상태고 기초 유분들을 가공해 생산하는 폴리에틸렌(PE) 등 합성수지의 자급률도 조만간 100%를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또 하나는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시장 진출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기존 정유 사업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던 기업들이 석유화학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추가적인 공급 과잉 상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4대 정유사 중 한 곳인 에쓰오일은 실제 약 9조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통해 '샤힌(매)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스팀 크래커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기존 12%에서 약 2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형 사업이다. 시장에 대형 플레이어가 진입하면 기존 사업자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