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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 거버넌스

총수 없는 대기업에 가까워진 네이버

⑦IT 대기업 창업 1세대 지분 희석, 이해진 3.7%로 경영승계 불가능

원충희 기자  2024-02-14 07:20:35

편집자주

최근 진행 중인 OCI그룹과 한미사이언스 간의 경영통합 시작은 한미약품그룹 총수일가의 상속세였다. 통상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이어 주식교환과 공동경영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상속세 이슈가 지배구조 이슈로 전환된 격이다. 최근 10년간 상속·증여세 이슈가 있었던 그룹들을 찾아 이들의 유형과 주주구성 및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봤다.
2000년 전후로 창업한 신흥 대기업들은 기존 전통 재벌과 달리 자본시장을 끼고 빠른 성장을 누렸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분야 포함되는 이른바 창업형 재벌들의 기업은 공시대상·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성장의 대가로 창업 1세대 만에 지분은 급격히 희석됐다. 네이버의 경우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1967년생인 이해진 창업자는 아직 상속·승계를 논할 정도는 아니지만 포스트 이해진 시대의 네이버는 민간 창업형 '소유분산 대기업(총수 없는 대기업)'이 될 공산이 크다.

◇2000년 전후 창업형 재벌, 빠른 성장만큼 지분 희석도 심해

국내 상속·증여세 이슈가 벌어질 때마다 항상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지분 희석으로 인한 오너십 불안이다. 30억원 넘는 경영권 지분에 경우 상증세율이 60%에 이르는 만큼 물려받은 유산의 절반 이상이 세금으로 나간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세 고지액이 176억원 정도였으며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한국화약그룹 회장의 상속인 김승연 회장 등이 낸 세금이 277억원(증여세 포함)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2조원이란 역대 최고 세금을 물게 된 삼성가는 이부진·서현 자매가 삼성SDS 지분을 거의 팔았고 삼성전자 지분도 처분하는 상황이다.

교보생명을 예로 들면 2003년 신용호 창업주가 별세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너가 지분율이 64.5%이었으나 현재 신창재 회장은 33.8%다. 훗날 3세대로 넘어갈 때는 이보다 지분이 더 줄어들 게 자명하다. 재계에서 3~4세대 이후로는 더 이상 오너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 현대차, LG 등 1930~1960년대에 창업된 전통 대기업 시절에는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만큼 금융권 차입이나 사채 돈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지분 희석이 빠르지 않았다. 반면 2000년 전후 창업한 IT 대기업들의 경우 자본시장과 사모펀드 등의 투자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지분 희석도 빨랐다.

이들은 창업 2세대로 넘어가는 게 전통 재벌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직 창업자들이 1960년대생으로 상속·승계를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최근 넥슨을 비롯해 일부에선 상속 이슈가 불거졌다.

◇IT 재벌들, 2세 승계 관련 기존 재벌과 다른 행보

창업형 재벌들 중에서 지분 희석이 가장 심한 곳으로 네이버가 꼽힌다.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지분이 3.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먼 훗날 이 GIO의 주식이 두 자녀에게 상속될 경우 1% 안팎으로 희석될 공산이 크다. 그 정도 지분이면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기 어렵다. 이 GIO 역시 과거부터 꾸준히 두 자녀들을 경영에 관여시키지 않을 것임을 천명해 왔다. 개인적 신념과 더불어 경영권을 승계할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창업세대 이후의 네이버는 소유분산 대기업으로 전향될 공산이 크다.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 총수지정 여부를 두고 갈등할 당시 네이버는 스스로를 '총수 없는 대기업'이라 주장했다. 물론 공정위에 인정되진 않았지만 이 GIO 이후 세대의 네이버 지배구조를 예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가 됐다.

*2023년 9월 말 기준

다만 기존 소유분산 대기업인 은행지주와 포스코, 농협, KT, KT&G 등과 결이 좀 다르다. 이들이 정부 영향을 강하게 받는 은행이나 민영화 된 대기업 등에서 비롯됐다면 네이버는 순수 민간회사가 소유분산 대기업으로 전향되는 유형이다. 또 다른 예로 창업자 지분이 10%대로 희석된 엔씨소프트의 경우 김택진 사장의 지분(11.9%)이 그의 자녀(4명) 세대로 넘어가면 오너가 지분은 사우디 국부펀드(9.3%) 넷마블(8.9%)보다 낮아질 수 있다.

IT 대기업 창업자들은 승계 이슈에 대해선 기존 재벌들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재산 50% 기부 발표와 함께 꾸준히 주식 기부를 해오고 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창업자 역시 지분은 8% 정도인데 그 또한 재산 절반 기부를 선언했다. 지분 희석될 일을 절대 하지 않는 여타 재벌가와 다른 행보다.

현재까진 새로운 형태의 소유분산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IT산업이 경제 전반 및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이같은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재계 관계자는 "신흥 대기업 창업자들은 자본시장의 도움을 받아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나 그만큼 지분 희석도 빨라 2세 승계를 크게 생각할 여건이 안 된다"며 "물론 기존 재벌들이 승계·상속 이슈로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것을 봐왔을 테니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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