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는 수년 전부터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지마켓 인수 등 대규모 투자의 여파로 늘어난 자금 소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유휴자산 매각과 공모채 발행 등을 통해 부족한 자체 현금창출력을 보강하는 형태다.
최근에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1500억원의 자금을 5년 만기로 대출받았다. 이마트 입장에서는 통상적인 자금 대출과 큰 차이가 없는 조달이다. 다만 그 이면에는 부채가 장부에 계상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녹아있다.
◇하나은행 'ABCP 매입보장+신용공여' 이마트에게 자금을 빌려준 SPC(해피월드하나제일차)는 하나은행이 이번 거래를 위해 세운 법인이다. SPC를 통해 대출이 진행되지만 사실상 이마트와 하나은행이 맺은 거래인 셈이다. 업무 수탁은 하나증권이 맡았다.
SPC는 이마트에게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하고 자산담보부대출(ABL)을 차입해 자금을 조달한다. 각각의 금액은 1200억원과 300억원이다. 이마트가 지급하는 대출원리금과 ABCP 차환발행대금, 이자율스왑계약에 따른 정산금 등을 재원으로 ABCP와 ABL을 상환하는 구조다. 유동화 작업에 필요한 기초자산은 1500억원의 대출채권이다. 이를 위해 SPC와 이마트는 앞선 9월 대출약정을 맺기도 했다.
1200억원 규모의 ABCP는 2028년 10월까지 3개월 단위로 차환 발행될 예정이다. 이 경우 차회차 미매각에 따른 ABCP 차환발행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SPC는 하나은행과 매입보장, 신용공여 약정을 맺은 상태다. SPC가 차환해 발행하는 ABCP의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등이 발생했을 때 하나은행이 매입(한도 1200억원)한다는 얘기다.
이번 거래는 금리변동에 따른 위험도 품고 있지만 관련 리스크 또한 하나은행이 일부 부담한다. 기초자산에 대한 이자는 약정한 고정금리로 산정되지만 업무위탁계약에 따른 회차별 ABCP의 할인율한도는 양도성예금증서(91일물) 수익률에 연동하는 변동금리로 산정됐다. 이에 금리변동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관련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해 SPC는 하나은행과 이자율스왑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부채로 안 잡히는 1500억 대출 이마트의 이번 자금 조달이 일반적인 은행 대출 등과 다른 점은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SPC를 만든 주체가 하나은행인 만큼 이마트의 재무제표에는 관련 대출이 계상되지 않는다. 대출채권을 기반으로 유동화를 진행했음에도 이마트 입장에서는 부외부채(unrecorded liability)가 되는 셈이다.
부외부채의 경우 우발채무와 관련이 깊다. 부채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우발채무는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한다. 통상 계류 중인 소송사건과 지급보증 등 우발채무 항목들이 대부분 주석을 통해 공시된다. 다만 이러한 유형들은 우발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이마트가 이러한 부외부채에 해당하는 자금 조달을 선택한 이유는 부채비율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2021년 이후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가운데 부족한 자금을 외부 자금 등으로 충당한 만큼 재무적인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마트는 2019년 미국 식품 유통기업 굿푸드홀딩스(Good Food Holdings)를 2045억원에 인수했다. 2021년 이후로는 지마켓(옛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위해 3조4000억원을 투입했고 SK와이번스 야구단을 품을 때는 1480억원이 사용됐다. SCK컴퍼니(브랜드 스타벅스)의 지분 17.5%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48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자산유동화 등을 통해 자금 소요에 대응하기는 했지만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채 증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이마트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019년에 100%를 넘어섰고 2021년에는 152%까지 증가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는 144%를 기록해 높은 부채비율을 유지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번 대출은 통상적인 운영자금 조달이며 하나은행과 협의해 진행됐다"며 "하나은행이 자체적으로 대출 기간과 금액 등을 고려해 SPC를 통한 유동화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