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형 지주사'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마음껏 투자에 전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계열사 지배와 관리는 물론 그룹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는 일 역시 소홀히해선 안 된다. 이 분야 선두주자인 SK㈜의 고민도 여기에서 온다. 똘똘하게 투자해 제때 엑시트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금 사정이 대체로 나빠진 현시점엔 일단 손에 쥐고 있는 걸 터는 수밖에 없다. 이미 움직임은 시작됐다. 투로와 쏘카, 그리고 왓슨까지. 다음으로 시장에 나올 자산은 무엇일까. 매각 시계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는 SK㈜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벨이 조명해 본다.
SK㈜에게 맞닥뜨리기 싫은 상황을 말해보라면 단연 투자 자산의 가치 하락일 것이다. 기껏 공들여 투자했는데 장부가가 하락한다면, 이는 투자전문 지주사에게 치명타다.
그러나 SES AI만은 예외다. 리튬메탈 이차전지 생산 업체의 가능성을 보고 벌써 5년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데, 지난해 상장 이후부터 주가 하락이 거듭되고 있다. 다만 SK㈜는 SES AI 경영에 직접 뛰어들겠다고 기재할 만큼 사업적 활용법을 마련하는 데 진심이다.
◇SES AI 주가, 줄곧 하향 곡선…결국 '취득 원가' 아래로
SES AI는 차세대 배터리로 평가받는 리튬메탈 이차전지 생산 업체다.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전기차용 107암페어시(Ah) 용량의 리튬메탈 이차전지 '아폴로'를 선보였다. 이듬해에는 뉴욕증권거래소 기업공개(IPO)에도 나서며 시장에 눈도장을 찍었다.
국내에서 가장 빨리 가능성을 엿본 곳이 SK㈜다. SK㈜는 지난 2018년 11월 SES AI에 약 284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2021년 400억원, 2022년에는 827억원을 추가로 돈을 태웠다. 그 대가로 SK㈜는 SES AI의 지분 12.19%를 확보, 2대 주주로 등극했다.
SK㈜에도 '대박'이 터지는 듯했다. SES AI는 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최대 34억달러(당시 혼율로 약 4조원)로 평가받았다. SK㈜의 지분 가치(12.19%)는4800억원에 달했으니 지분 투자금 1500억원 대비, 약 3배가량의 투자 차익을 얻을 것으로 업계는 봤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이후 SES AI의 주가가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다. 거듭된 하락으로 한 때 34억달러이던 시가총액이 올해 초 5억달러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현재는 약간의 반등 이후 7억달러(920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결국 현시점에서 SES AI는 SK㈜에게 '손해'다. 예컨대 올해 6월 말 기준 SK㈜가 평가한 SES AI 지분의 공정가치(실제 가치)는 약 1222억원이다. 지난해 말(1524억원)까지만 해도 회사의 투자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계속된 가치 하락을 막지 못했다.
◇어차피 투자 차익 당장 못 내…'경영참여'로 협력 방안 모색할 듯
지금의 페이스라면 SES AI의 주가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 증설에 따라 리튬메탈 공급이 늘어났고, 이에 리튬메탈 수요 자체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다만 흥미로운 사실은 SK㈜의 SES AI 활용법이 단순히 수익 창출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SK㈜는 2021년 SES AI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바꿔 기재했다. 경영 참가는 통상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할 때 기재한다.
업계는 SES AI의 활용법이 리튬메탈 이차전지 상용화라는 큰 그림과 연결시켜 보고 있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리튬이온 이차전지 는 향후 개발이 지속되더라도 에너지 밀도를 리터당 800와트시(Wh/L) 이상으로 높일 수 없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차전지 제조 계열사(SK온)를 두고 있는 SK㈜ 입장에선 공동 연구 및 개발 등의 시너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셈이다. SES AI도 작년 상장과 동시에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시험생산 시설을 건립하는 등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나가고 있다.
어차피 당장 투자 차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단기 매각보다는 이 기회에 중장기 사업 연계를 도모할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린다. SES AI의 리튬메탈 이차전지 상용화 목표 시기인 2025년 전후로는 회사의 기업가치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도 SES AI에 1억달러를 투자한 뒤, 리튬메탈 이차전지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라며 "SK㈜가 2대주주인 만큼 리튬메탈 이차전지 시제품을 받아보면서 협력 방식을 개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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