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형 지주사'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마음껏 투자에 전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계열사 지배와 관리는 물론 그룹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는 일 역시 소홀히해선 안 된다. 이 분야 선두주자인 SK㈜의 고민도 여기에서 온다. 똘똘하게 투자해 제때 엑시트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금 사정이 대체로 나빠진 현시점엔 일단 손에 쥐고 있는 걸 터는 수밖에 없다. 이미 움직임은 시작됐다. 투로와 쏘카, 그리고 왓슨까지. 다음으로 시장에 나올 자산은 무엇일까. 매각 시계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는 SK㈜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벨이 조명해 본다.
중국 데이터센터 기업 '친데이터'는 SK㈜의 메인 디지털 투자 자산이다. 친데이터는 나스닥 상장 직후인 2020년 한때 SK㈜의 투자 차익이 최대 2500억원까지로도 매겨졌다.
다만 오늘날의 친데이터는 얘기가 다르다. 2021년 이후 주가가 추세적 내림세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지분가치와 장부가액은 모두 취득원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러던 중 마침 최대주주 베인캐피털이 추가 지분 매입을 진행한 후 친데이터를 '상장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SK㈜의 결정은 엑시트일지 장기전일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3년 전 대비 지분가치·장부가액 모두 하락
친데이터는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등을 주 무대로 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전문 기업이다. 최대 주주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이다.
SK㈜는 3년 전 친데이터에 '1780억원'을 베팅했다. 조세회피처인 케이만제도에 특수목적법(Einstein Cayman Limited)을 세운 뒤 한국교직원공제회와 손(ZETA CAYMAN LIMITED)을 잡고 돈을 절반씩 부담, 친데이터 지분 7.5%(약 3600억원)를 인수하면서다.
성과는 바로 보이는 듯했다. 2020년 10월 친데이터가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그해 연말 시가 총액이 87억달러(9조4000억원)까지 높아졌다. SK㈜·한국교직원공제회의 지분가치도 8460억원, 수개월 만에 이들의 투자 차익은 각각 2500억원까지도 평가됐다.
다만 이후의 기세가 주춤했다. 2021년 초반 이후 계속해서 추세적 내림세를 나타내다가 2022년 1월에는 시총이 15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시총이 다시 30억달러를 넘으며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 역시 아직 고점 대비 65%나 빠진 수치다.
SK㈜로선 매각 시기를 놓친 셈이 됐다. 예컨대 SK㈜와 한국교직원공제회의 지분가치 7.5%는 현재 약 2억2500만달러(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이 SK㈜의 소유라고 볼 때 IPO 이후의 투자 차익은커녕, 취득원가(1780억원)마저 밑도는 상황이다.
장부가액으로 봐도 SK㈜가 입은 손해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SK㈜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세운 SPC(ZETA CAYMAN LIMITED) 장부가액은 1300억원이다. 2020년 말 취득원가 1780억원에서 3년새 벌써 480억원이나 감소했다.
◇베인캐피털, 친데이터 지분 취득 진행…SK㈜, 이참에 내놓을까
SK㈜는 지난해 디지털 투자 자산에 한해서만큼은 적극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기조가 적용된 대표 사례는 카셰어링 업체인 '투로'와 '쏘카'다. 이들은 SK㈜의 투자 이후 미국과 한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SK㈜ 역시 475억원, 372억원의 투자 차익을 거두고 올해 2월과 8월에 '엑시트'를 모두 마쳤다.
최근 친데이터를 둘러싼 재무적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SK㈜가 이 기회에 디지털 자산 정리 속도를 더 높일지 주목된다. 최대주주(42%)인 베인캐피탈은 지난달 친데이터 지분을 시세보다 비싼 주당 8.6달러에 매입한 후 '상장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 SK㈜는 아직 친데이터에서 투자 차익을 얻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투자 기간이 벌써 3년이 흘렀고 그 사이 IPO의 효과가 미미했던 만큼 이참에 베인캐피탈에 지분을 넘기고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단 관측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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