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형 지주사'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마음껏 투자에 전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계열사 지배와 관리는 물론 그룹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는 일 역시 소홀히해선 안 된다. 이 분야 선두주자인 SK㈜의 고민도 여기에서 온다. 똘똘하게 투자해 제때 엑시트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금 사정이 대체로 나빠진 현시점엔 일단 손에 쥐고 있는 걸 터는 수밖에 없다. 이미 움직임은 시작됐다. 투로와 쏘카, 그리고 왓슨까지. 다음으로 시장에 나올 자산은 무엇일까. 매각 시계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는 SK㈜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벨이 조명해 본다.
SK㈜는 식물성 단백질이나 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한 일명 '대체식품'의 주요 투자처로 유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대체식품의 사진이나 소개글을 종종 올리며 SK㈜의 투자 행보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SK㈜가 투자한 금액은 이미 상당하다. 벌써 4년째 엑시트(투자금 회수) 없이 2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당장 이익을 내고 있는지를 따져 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단은 미래 성장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모습이다.
◇2019년 첫 지분 취득…포트폴리오 벌써 다섯 군데
대체식품은 콩이나 버섯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이나 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해 만든 식품을 말한다. 가축에 기반한 전통 식품 산업에 비해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좋고 식품 안정성 등을 높일 수 있어 미래 대안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선 SK㈜가 최대 투자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환경친화적 음식의 일상화'라는 기치 하에 돈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새 4년이 흘렀다. 2025년까지 글로벌 친환경 솔루션 제공자(Provider)가 되겠단 목표로 지금껏 약 2000억원 넘게 투자해 왔다.
SK㈜가 선택한 곳은 총 다섯 군데다. 발효 단백질 생산기술을 보유한 '퍼펙트 데이'와 '네이처스 파인드', 세포 배양 기술로 연어를 생산하는 '와일드 타입', 중국의 식품 유통 사업자인 '조이비오 그룹', 식물성 고기 업체 미트리스팜 등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이 중 중국 조이비오 그룹에 가장 먼저(2019년) 가장 많이(2137억원) 베팅했다. 국내 한 사모펀드(PEF)와 함께 투자해 지분 14%를 얻었다. 이후 2021년엔 중국 내 지속가능 식품 투자를 위해 조이비오 그룹과 1000억원대의 공동 펀드도 조성한 상황이다.
물론 손에 잡히는 수익을 내는 단계는 아니다. 조이비오 그룹의 올 상반기 말 순손익은 약 400억원이다. 지난해 말(-1000억원)에 비해 상황이 뒤집혔다. 다만 장부가액은 2191억원에서 1972억원으로 줄었으니 당장 매각해도 투자금을 밑도는 금액을 얻어갈 수 있다.
◇성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오너의 사업 의지는 충분
이처럼 대체식품은 성과를 알 수 없는 초기 산업인 만큼 장기적 결실을 염두에 두고 지원돼야 하는 분야다. 이에 SK㈜도 착실하게 씨앗을 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SK㈜는 2021년 미국 퍼펙트데이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면서 김무환 그린투자센터장을 이사회에 포진시켰다. 협업 체계까지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SK㈜는 퍼펙트데이의 기술력을 활용, 매일유업과 국내에서 대체 단백질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오너의 의지 역시 충분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체식품 사랑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8월 그는 자신의 SNS에서 SK㈜가 약 88억원을 투자한 '와일드 타입'의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퍼펙트데이'의 발효 단백질 아이스크림 사진을 올린 바 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3'에 참석해 발효 단백질을 활용한 '네이처스 파인드'의 크림치즈를 직접 시식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제품 개발 현황을 점검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수입 안 하나"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대체식품 기업에 추가 투자를 검토한 바 있다"라며 "회장님의 사업 의지가 충분해 빠른 시일 내 매각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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