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 운용 성과는 회사 부채 관리의 문제를 넘어 근로자들의 안정적인 노후 자금 확보와 맞닿아있다. 따라서 DB 사외적립금 투자 내용과 성과는 자금을 관리하는 CFO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관심이 높을수 밖에 없다. 더벨은 상장기업들의 DB운용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KB국민은행이 최근 수년간 확정급여형(DB) 적립금의 운용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다변화하고 있다. 정기예금 투입 비중을 줄이면서 펀드 등 실적배당형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행보가 포착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앞으로 운용 다변화 기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지만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 성과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국민은행이 KB자산운용 OCIO 펀드에 DB 적립금을 투입한 것은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운용은 2020년 말 'KB타겟리턴안정형 OCIO' 펀드를 출시한 이후 이듬해 초 같은 시리즈 성장형, 지난해에는 적극형을 각각 출시했는데, 국민은행이 안정형과 성장형 등 두 종류 펀드에 지금껏 2000억원 안팎 적립금을 태웠다.
2020년 말 당시 국민은행의 개별기준 DB 적립금 공정가치는 1조5834억원. 이때 확정급여채무 현재가치는 1조7341억원으로 적립비율은 91.3% 수준이었다. 국민은행은 DB 적립금의 91%가량에 해당하는 1조4331억원을 정기예금에 태우고 있었고, 나머지 9%인 1503억원을 다른 상품들로 운용하고 있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은행은 DB 적립금의 99%를 정기예금에 투입하고 있었다. KB운용 OCIO 펀드에 800억여원을 최초 투입하면서 1년 동안 투자 금액을 꾸준히 확대해 온 셈이다. 2021년 말 정기예금 외 상품 운용 규모는 3183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했고, 운용비중 역시 18.8%로 확대했다.
이후에도 국민은행은 DB 적립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늘렸다. 지난해 국민은행 DB 적립금 공정가치는 1조8421억원으로 확정급여채무 현재가치 1조5348억원을 초과, 적립비율 120%를 기록했다. 정기예금 비중은 적립금의 75.4%로 줄어든 반면, 여타 금융상품 운용 비중은 24.6%(4541억원)로 커졌다,
현재 국민은행은 KB자산운용 펀드뿐 아니라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등 복수의 운용사 상품들에 4500억원 가량을 분산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운용 OCIO 펀드에 투자한 금액은 현재까지 누적 2000억원 수준. 국민은행은 앞으로도 꾸준히 DB 적립금의 실적배당형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펀드 투자 운용 성과는 부진하다. 2022사업연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할인율을 감안해 재측정한 정기예금 이자수익 외 사외적립자산 운용수익은 마이너스 548억원. 최근 3년여간 꾸준히 확대해 온 실적배당형 상품의 종합 운용 성과가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국민은행이 적립금의 상당비중을 투입한 KB운용의 OCIO 펀드 역시 최근까지 운용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20일 현재 KB타겟리턴안정형 OCIO펀드의 퇴직연금 클래스 설정 후 누적 수익률은 3.24%. 최근 2년 수익률이 마이너스 2.28%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말 이후 최근에야 플러스 수익률을 회복한 셈이다.
같은 기간 KB타겟리턴성장형 OCIO 펀드의 경우 누적 수익률은 2.24%. 역시 최근 2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0.67%로 최근에 들어서야 수익률 추이가 급격한 오름세를 기록했다. 국민은행이 적립금을 시기별로 분산 투자해 온 만큼 현재 운용 수익률은 펀드 단순 누적치를 밑돌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 중 가장 적극적으로 DB 적립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 고착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내외 증시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수익률이 출렁인 결과"라며 "최근 2년 성과는 시장 기대치를 밑돈 게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DB 적립금 실적배당형 운용 시도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일부 지방은행이 실적배당형 상품 가입 등을 검토하다가 시장 영향으로 계획을 백지화하자 운용 포트폴리오 변화를 시도하려고 했던 일부 시중은행의 계획도 무기한 연장된 상태다. 대표적으로는 신한은행 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국내외 기준금리가 고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보다는 장기채 투자 매력도가 커지면서 OCIO 펀드 가입 동기가 옅어졌다는 평가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연초 이후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운용 수익률이 개선될 수는 있지만 OCIO 펀드 진입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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