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중 어느 쪽이 주주에게 더 유리할까. 최근 몇 년 자사주를 활용한 주주환원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새롭게 떠오른 화두다. 배당이든 자사주 매입·소각이든 기업에서 나가는 돈은 같다. 주주에게 들어오는 돈 역시 일련의 계산을 거치면 마찬가지로 같다.
지난해부터 국내 금융지주들의 총주주환원율이 큰 폭으로 높아진 배경엔 자사주 활용이 있다. 배당만으로는 총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주요 금융지주 대부분이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통해 총주주환원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주주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배당이냐, 자사주 매입·소각이냐 주요 금융지주들의 총주주환원율은 2023년 일제히 30%대를 기록했다. 가장 높은 곳이 KB금융으로 37.7%에 이르렀고, 가장 낮은 곳은 하나금융으로 33%를 기록했다. 지방지주들의 총주주환원율 역시 28~33% 사이였다. 대부분의 금융지주들이 전체 순이익의 30%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줬다는 의미다.
겨우 1년 전인 2022년까지만 해도 사실 대부분의 금융지주의 총주주환원율이 20%대에 그쳤다. 총주주환원율이 가장 높은 KB금융 역시 자사주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전인 2022년까진 총주주환원율이 26.2%였다. 2023년 배당금으로 1174억원을 쓰고 자사주 매입·소각에 572억원을 쓰면서 전체 주주환원총액이 1746억원을 기록했다. 배당만 있던 전년(1149억원)보다 급증했다.
기업 입장에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모두 회사가 보유한 돈을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주주에게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의 효과는 같다. 배당을 받으면 주주는 현금을 손에 쥐는 대신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가치는 떨어진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주주 입장에서 당장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지만 주식 수가 줄어 주식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주식을 오래 보유할 경우엔 자사주 매입·소각이 더 유리하다. 지분율이 높아져 각종 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단기적으론 효과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선 자사주를 매입하고 또 소각한다고 해도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 역시 나타나고 있다.
배당은 어떨까. 일단 즉각적으로 현금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주주에게 득이 된다. 다만 배당에겐 세금이라는 명확한 단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배당수익의 15.4%를 배당소득세로 걷는다. 하지만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다른 종합소득과 합해 누진세율(6.6~49.5%)을 적용한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로 누진세가 적용돼 40% 이상의 세율로 과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사주 매입·소각 우선으로…배당은 점진적 확대 일반적으로 배당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늘리는 편이 주주들에게 유리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층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배당이 월급이라면 자사주 매입·소각은 예상치 못한 일종의 보너스라는 시각이다.
금융지주들도 이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가 내놓은 밸류업 방안을 살펴보면 배당은 기존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점진적으로 늘리고, 자사주 매입·소각을 큰 폭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둘 중 어느 쪽이 주주가치 제고에 효과적일지를 놓고 내부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검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을 상황에선 자사주를 활용한 주가 부양이 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KB금융은 PBR이 0.5~1.0배일 땐 자사주 매입·소각 비중을 확대하고 1.0배가 넘으면 탄력적으로 주주환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이익수익률(주가 대비 순이익의 수준)을 비교해 이익수익률이 ROE보다 클 경우엔 지속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배당의 경우 배당수익률과 시장금리를 감안해 점진적으로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신한금융은 PBR 0.8배 미만 수준까지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훨씬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신한금융은 아예 주식 수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한 유일한 곳이다. 현재 5억939만주인 주식 수를 2027년까지 4억5000만주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다. 당분간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소각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금융지주들도 배당은 점진적으로 늘리되, 자사주 매입·소각 비중은 크게 확대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예컨대 하나금융은 2024년 기준 배당 69%, 자사주 매입·소각 31%인 비중을 2027년 배당 53%, 자사주 매입·소각 47%로 거의 동등하게 가져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