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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막과 동행은 계속될까

2019년 정의선 수석부회장 시절 최대 투자건...전기차 개발 역량 향상으로 협업 필요성↓

양도웅 기자  2023-09-01 14:31:18

편집자주

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THE CFO가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크로아티아 고성능 전기차 업체인 '리막(Rimac)'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9년 수석부회장에 선임된 직후 투자한 곳이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크로아티아 리막 본사에서 열린 투자 협약식에 직접 참석해 리막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테 리막과 만나는 등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차기 리더의 선택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투자 규모에서도 눈에 띄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9년 7월 총 1050억원을 출자해 약 14%의 지분(양사 합산)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권리도 획득했다. 이 해에 현대차와 기아가 가장 큰 규모로 투자한 곳이 리막이었다.

2019년 5월 투자 계약 체결식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수석부회장)과 마테 리막 리막 최고경영자(CEO).

◇2019년 최초 투자 이후 후속 투자 않은 현대차그룹

그로부터 4년 2개월이 지난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리막의 위상은 어떨까. 우선 주목할 점은 현대차그룹이 최소 4차례 이상 진행한 리막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최초 투자 당시 14%였던 지분율은 꾸준히 떨어져 올해 6월 말 8%로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이 후속 투자를 하지 않는 동안 리막에 대규모 투자를 한 곳은 포르쉐다. 리막은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명확한 지분 구조가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유증에 참여해 리막 지분율을 끌어올린 곳은 포르쉐다. 포르쉐는 현대차그룹보다 두 배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사는 합작법인도 설립했다.

이처럼 리막이 포르셰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지난해 리막과 현대차의 결별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리막 CEO가 해명에 나설 정도로 이같은 전망은 힘을 얻었는데, 그는 지난해 5월 본인 SNS에 직접 "현대차와 리막 모두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Both Hyundai and Rimac have said that it is not true)"라고 밝혔다.

해프닝은 일단락됐지만 리막 투자건은 그간 현대차그룹의 투자 방식과 비교했을 때 의아한 면이 없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최초에 대규모로 출자했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에 대해선 후속 투자를 꾸준히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슈퍼널, 포티투닷, SES 등이다. 포티투닷처럼 소규모 지분 인수 후 아예 경영권을 가져온 사례도 있다.


◇현대차 주도로 만든 아이오닉5 'N'...줄어드는 리막 필요성

2019년 현대차그룹이 리막에 투자했을 당시 양사는 크게 두 가지 부문에서 협업을 약속했다. 고성능 브랜드인 N을 계승해 미드십 스포츠 콘셉트카의 전기차와 수소차 모델 개발이다. 이르면 1년 뒤인 2020년 선보인다는 계획이었다. 이른 감도 있지만 양사가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자체적으로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기대를 모았다.

시차는 다소 있었지만 현대차그룹은 2020년과 2021년 리막과 협업해 만든 고성능 전기차와 수소차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이어 2022년 더 양산 모델에 가까운 형태로 고성능 브랜드 N을 잇는 전기차 콘셉트카 'RN22e'와 수소차 콘셉트카 'N비전74'를 내놨다.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인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 N'의 기반이 된 게 'RN22e'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리막과의 협업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가격과 성능 가운데 한쪽만을 택할 수 없는 현대차그룹과 성능을 최우선으로 두고 개발하는 리막 사이의 지향점 차이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현대차그룹의 고성능 전기차 개발 역량이 향상되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리막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아이오닉5 N 모습

이러한 평가의 근거 중 하나가 아이오닉5 N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7월 영국에서 차량을 공개하며 "모두 재밌게 일하며 만든 차"라며 "연구원들의 자부심이 크다는 점 때문에 기분이 더 좋다"고 말했다. 현재 고성능 브랜드 N은 박준우 상무(N브랜드매니지먼트 실장)와 틸바텐베르크 상무(N브랜드&모터스포츠사업부장)다.

리막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운 2021년부터 순이익에서 순손실로 전환했다. 2020년 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2021년 624억원, 2022년 95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유증을 통한 대규모 투자 유치로 2020년 말 2408억원이던 자산총계는 2022년 말 1조2447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상장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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