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경영 실적이 저하되자 글로벌 신용등급 방향성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무엇보다 지난해 무디스(Moody's)는 삼성전자의 신용도를 상향한 상태다. 올해 1분기 잠정실적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무디스의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할 개연성은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박학규 사장은 보수적인 재무 정책을 유지하며 신용도 방어 여력을 키우는 모습이다.
◇무디스, 2017년 이후 삼성전자 신용도 두 차례 상향
삼성전자는 1997년에 미국에서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서 무디스, S&P로부터 신용등급을 평정 받았다. 해당 사채의 미상환 잔액은 작년 말 기준 317억원이다. 2027년까지 원금과 이자를 동등비율로 분할상환해야 하는 만큼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도 유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4년에 원화채권을 만기 상환하면서 신용등급이 소멸된 상태다.
18일 기준 S&P는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AA-(안정적), 무디스는 Aa2(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우호적이던 2017년을 전후해 S&P는 한 차례, 무디스는 두 번에 걸쳐 삼성전자 신용도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무디스가 삼성전자 신용등급을 상향한 시점은 작년 9월이다. 신용도의 척도로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을 꼽았다. 실제로 작년 연간 영업이익(이하 연결기준) 43조원 가운데 해당 사업부의 기여도는 24조원으로 53%를 나타내고 있다.
무디스는 작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관련 수요가 감소했지만 올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45조~50조원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경영 실적은 무디스의 전망치와 격차가 벌어져 있다. 잠정 실적 발표에 따르면 연결기준 1분기 매출액은 63조원, 영업이익은 6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96% 감소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재고자산평가손실 등이 부담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하향 조정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 '촉각'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량을 줄여 업황 회복 속도를 앞당긴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공급 축소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 예상치는 10조원대 안팎으로 무디스 전망치(45조~50조원)와 괴리가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률 전망치 역시 5% 전후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무디스에서 평정 받은 Aa2 신용등급을 지탱할 여력은 제한될 수 있다.
무디스는 삼성전자 신용도를 하향 검토할 요인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영업이익률 13~14% 미만 △잉여현금흐름 창출 능력 저하 △순현금 보유 규모 약화 등이 해당된다.
정량적인 지표들은 등급 하향 조건에 가까워진 상황이다. 우선 최근 2년 동안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만으로 자본적지출(CAPEX)과 배당금 지급을 감내하지 못했다. 잉여현금흐름은 적자 상태로 2021년에 -5조2339억원, 작년에 -7598억원을 기록했다.
자체 현금을 투자 등에 동원한 결과 연결기준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2021년 말 약 121조원에서 작년 말 115조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현금 보유액은 18조9194억원에서 3조9217억원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삼성전자가 무디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영역은 재무정책이 손꼽힌다. 무디스는 삼성전자 신용도 평가 과정에서 '보수적인 재무정책'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낮은 수준의 레버리지 지표와 대규모 현금 보유액 등을 근거로 설명한다.
S&P의 경우 삼성전자 재무건전성이 견조하다고 보는 가운데 무디스도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할지 관심거리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보수적인 재무정책을 유지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외부 차입을 늘리지 않고 내부 현금을 사용하는 기조를 지켰다.
CFO인 박학규 사장은 2월에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빌리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올해 예정된 53조원의 투자에 대응하려는 목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인만큼 연결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에는 변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