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주들이 줄줄이 배당기준일을 의결권 기준일과 분리하기로 했다. 이른바 ‘깜깜이 배당’ 해소를 위해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배당절차 개선안을 적용한 움직임이다. 은행지주들은 최근 행동주의펀드로부터 주주환원책을 강화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만큼 배당기준일 변경은 사실상 예견된 결정이라는 평가다.
◇6개 지주 주총안건 상정…'이자 장사' 논란에 눈치
은행지주들은 이달 17일 BNK금융을 시작으로 연달아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신한지주가 23일, KB금융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24일 주총이 예정돼 있고 JB금융지주는 30일에 뒤를 따를 전망이다. 7개 상장 은행지주 가운데 DGB금융지주는 아직 주총소집 공고를 내지 않았다. 아직 방침을 밝히지 않은 DGB금융지주 역시 동참이 예상된다.
소집공고를 발표한 6개 은행지주의 주총 안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공통적으로 배당기준일을 바꾸기 위한 정관변경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특히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분기배당을 위한 정관 변경도 병행했다. 신한, KB금융은 이미 작년에 분기배당을 정례화했으나 4대 은행지주가 모두 분기배당 채비를 마친 셈이다.
그간 은행지주사들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매년 말일 주주명부를 기준으로 배당받을 주주를 우선 확정하고, 이듬해 3월 열리는 주총에서 배당 여부와 배당액을 결의하는 형태로 배당을 해왔다. 하지만 여기엔 투자자들이 배당 계획을 미리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배당기준일을 배당액 확정 이후로 옮기도록 하는 개선방안을 올 1월 말 제시했다. 아직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이지만 금융위 심기를 거스르기 어려운 은행지주들이 선제 반영을 택한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행동주의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7개 상장 은행지주에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하면서 은행 배당정책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집중돼 있다. 설상가상 ‘이자 장사’ 논란에 정부와 금융위 등으로부터 전방위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만큼 은행지주들로선 당국 정책에 예년보다도 바짝 협력할 필요가 있는 시기다.
은행지주들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고금리 영향으로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이윤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신한지주 4조6423억원, KB금융 4조4133억원, 하나금융 3조6257억원, 우리금융 3조1693억원, 농협금융 2조2309억원 등 18조원 이상이다.
덕분에 2022년 결산 주주환원도 예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결정됐다. 신한금융의 보통주 배당성향은 22.8%로 전년보다 2.4% 낮아졌지만 1500억원의 자사주 취득·소각 계획을 함께 밝혔다. KB금융지주는 배당성향을 전년과 같은 26%로 유지한 대신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의결했고 주주환원율은 33%로 7%포인트 높아졌다. 하나금융의 경우 배당성향이 은행지주 가운데 27%로 가장 높을뿐더러 1500억원 상당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연내 진행한다. 이런 배당 확대에는 얼라인이 촉발한 주주환원 압박이 일부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배당확대냐 자본건전성이냐, 갈팡질팡 금융권
문제는 금융당국이 ‘돈 잔치 말라’며 눈총을 주고 있다는 데 있다. 배당기준일 변경과 관련해선 얼라인 등 주주와 금융당국의 요구가 엇갈릴 이유가 없지만 배당규모는 사정이 다르다. 금융당국은 자본 건전성을 우선해야 한다며 배당확대에 역력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지주사는 아니지만 KB증권이 지난달 7일 1주당 669원, 총 2000억원을 배당한다고 공시했다가 이달 1주당 334억원, 총 1000억원으로 배당액을 축소 정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주환원을 늘리라는 주주들의 요구, 과도한 배당을 못마땅해 하는 금융당국 사이에서의 난감함이 엿보인다.
실제로 JB금융의 경우 얼라인의 요구를 거부해 주총을 앞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얼라인은 JB금융지주 지분 14.4%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있다. 앞서 주당 900원 배당, 추가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요구했지만 JB금융이 거절했다. 주당 900원을 배당할 경우 재무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얼라인 측은 "주당 900원을 지급해도 JB금융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2022년 말 기준 약 11.28%로 추정되며, 이는 다른 지방금융지주인 BNK금융(11.21%)과 DGB금융(11.25%)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만큼 배당 규모는 주총에서 표 대결로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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