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지난 수십년간 ‘C레벨’에 여러 직책이 추가됐다. 특히 ‘최고회계책임자(CAO)’의 명패가 더해진 것은 꽤 의미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기업에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있는데 굳이 CAO까지 둬야 하는 이유는 뭘까. CFO의 역할이 비재무적인 영역까지 넓어지는 글로벌 추세와 관련이 있다. 전통적 롤을 나눠 짊어질 CAO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런 흐름에 빠르게 합류한 국내 기업으로 쿠팡이 꼽힌다.
◇쿠팡 CAO, 마이클 파커 →
조나단 리쿠팡의 초대 CAO는 현재 IR 책임자(Head)로 있는 마이클 파커(Michael Parker) 부사장(Vice President)이다. 파커 부사장은 글로벌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에서 1999년부터 12년 넘게 근무했다. 상장기업의 재무재표 감사 업무를 주로 했다. 2년간 회계·감사 분야의 기술적 이슈에 대해 전문적인 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1년 월마트로 옮긴 뒤로는 글로벌 회계정책 선임 이사, 월마트 차이나 컨트롤러, 월마트 캐나다 부사장(FP&A 및 상품금융), 월마트 재무혁신 부사장 등을 지내면서 재무 쪽 업무를 맡았다. 이후 나이키에서 3년간 거버넌스 관리와 외부 보고 통제를 담당하다가 2019년 4월 쿠팡의 CAO(Chief Accounting Officer)로 왔다.
직책 이동이 있었던 것은 3년 뒤인 2022년 3월이다. 이때 쿠팡 IR책임자였던 마이클 센노(Michael Senno) 전 부사장이 레스토랑 관리 플랫폼인 토스트(Toast)의 IR 임원으로 이직했고, 파커 부사장이 쿠팡 CAO와 IR 헤드를 겸하는 형태가 됐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조나단 리(Jonathan Lee)가 새로운 CAO로 선임되면서 파커 부사장은 IR 책임자만 담당하고 있다.
신임 CAO인 조나단 리는 보험과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20년간 몸담아온 인물이다. 파커 부사장과는 딜로이트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딜로이트에서 일한 시기도 2000년부터 2010년 즈음으로 파커 부사장과 비슷하다. 다만 일한 지역이 파커 부사장은 포틀랜드, 오리건, 네바다, 코네티컷 주 등이고 리 CAO의 경우 뉴욕이라는 점에서 근무 지점이 겹치진 않는다.
리 CAO는 딜로이트 선임 관리자로 있다가 리버티 뮤추얼의 글로벌 특수보험부문인 ‘리버티 인터내셔널 언더라이터스’에서 재무 관리 및 보고 업무를 담당했다. 2021년에는 특약재보험사 ‘얼라이드 월드’로 옮겨 공시 책임자와 CFO를 차례로 거쳤다. 이후 트라이넷 CAO로 약 1년 반 동안 근무, 쿠팡에는 작년 9월 영입돼 CAO에 올랐다.
◇CAO 왜 필요할까, CFO의 '코 파일럿(Co-Pilot)'CAO는 언뜻 CFO와 직무가 겹쳐 보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CFO는 회사의 모든 재무적 기능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세무와 자금조달, 재무회계 등이 포함된다. 다만 CAO의 업무는 CFO와 비교해 더 일상적인 회계 작업에 집중돼 있다. 경력 측면에서도 최근 ‘전략통’ 출신 CFO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CAO에겐 반드시 회계적인 전문성이 요구된다.
쿠팡의 전·현직 CAO인 파커 부사장, 조나단 리가 전부 회계법인에서 오래 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예컨대 리 CAO는 얼라이드 월드 등에서 CFO 역할을 할 때도 정기적인 재무관리, 재무제표 제출 등 회계적 업무를 주로 하면서 그룹 CFO에 보고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얼라이드 월드에 근무할 당시 직속상사였던 부파 글로벌(Bupa Global)의 코너 히어리(Conor Heery) CEO는 리 CAO에 대해 “리는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보고 속도를 개선하고 재무보고전용언어(XBRL) 제출을 자동화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며 “내가 경험한 최고의 고용인 중 하나라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부파 글로벌은 국제적인 의료보험기업이다.
반면 거라브 아난드(Gaurav Anand) 쿠팡 CFO의 경우 아마존 재무임원 출신이지만 재무적인 이슈 뿐 아니라 비즈니스 전략, 비즈니스 모델링, 기획,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갖춰야하는 역량과 업무 영역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이런 CAO의 약진은 CFO의 위상 변화와 맞물려서 일어났다. CFO가 가지는 권한과 책임이 전략이나 사회적 부분까지 포괄하는 케이스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또 예산과 비즈니스 시나리오 설계, M&A(인수합병) 매물 물색 등 기업의 목표실현을 위한 핵심 임무도 적지않은 경우 CFO가 떠안는다. 10년 전만 해도 루틴한 조달이나 회계에 쏠려 있던 역할이 비즈니스 전반으로 옮겨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CFO의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부조종사(Co-Pilot)가 있어야할 필요성도 늘었다는 의미"라며 "손이 모자란 자리를 CAO가 채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