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년 만의 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쿠팡은 가파른 분수령에 서 있다. 기세를 몰아 추세적인 이익창출 구조를 굳힐 수 있을지를 두고 투자자들의 시선이 엇갈리는 국면이다. 모간스탠리는 쿠팡 주식을 무더기로 던진 반면 블랙록은 대거 사들였다.
내수시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쿠팡의 성장 여력을 장담하긴 어렵다. 실적과 손익에 대한 비전 실현을 위해 비즈니스 리더들은 어떤 도움을 받을까. C레벨 임원들의 고민을 돕는 FP&A(재무기획·분석)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CFO 직속'에서 시작, 전 사업부로 분포
거라브 아난드(Gaurav Anand)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의 쿠팡 파이낸스(Finance) 조직은 재무회계, 자금, 세무, 내부통제팀과 별도로 FP&A팀을 두고 있다. 애초 ‘CFO 직속’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던 팀이다. 처음엔 주로 로켓배송을 담당하는 리테일 사업부에서 재무와 비즈니스 전략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리테일 뿐 아니라 인스톡(재고), 로지스틱스(물류), 마케팅, 마켓플레이스 등의 작은 팀으로 나뉘어 모든 사업부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 CFO를 포함한 쿠팡 경영진이 재무적 타깃에 다다를 수 있도록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향성까지 내놓는 역할이다.
특히 KPI(핵심성과지표)의 정의방식을 발굴하고 얼마나 달성했는지, 달성하지 못했다면 이유가 뭔지 등을 관리하는 일이 중요한 업무로 꼽힌다. 지표 설정과 매니지먼트가 적절치 못하면 재무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아마존 운명 뒤바꾼 주역, FP&A
FP&A 직무의 중요성을 실감하려면 쿠팡이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는 아마존(Amazon)의 케이스를 봐야한다. 지금의 아마존을 만든 '게임 체인징(Game-Changing)' 전략은 2001년 어떤 회의실에서 만들어졌다.
닷컴버블 직후, 막 만들어진 신생 조직이던 아마존 FP&A팀은 격렬한 논쟁에 들어갔다. ‘온라인 배송비를 완전히 없애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FP&A팀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우선 무료배송을 하는 것은 (비용적으로) 10%의 할인을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에 따른 거래 성장 효과는 10% 할인을 실제로 제공할 때의 2배에 이른다.
문제는 무료배송을 할 경우 배송비를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는 고객에 대해선 수익 잠식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도 이 이슈 때문에 여러 번 미팅에 참여했으나 퍼즐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FP&A팀이 ‘5일 지연’ 아이디어를 내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배송비를 내면 2일 안에 물건을 받고 무료배송을 원하는 고객은 5일 늦게 받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당시 FP&A팀에 있었던 제이슨 차일드(Jason Child)는 '2001년 배송비 논쟁'이 2억명의 회원을 보유한 아마존프라임의 탄생, 그리고 아마존의 폭발적 성장을 만든 기반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이슨 차일드 이사회 영입, 쿠팡 FP&A 인력은
제이슨 차일드는 현재 쿠팡의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2022년 4월 영입됐는데 쿠팡이 흑자 전환의 기로에 있던 시기다. 지난해 3분기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출범한 이래 처음으로 영업흑자를 냈다. 그간의 물류 인프라 투자가 결실을 맺었고 머신러닝(기계학습)에 기반한 수요 예측으로 신선식품 재고손실을 줄인 덕을 봤다. 하지만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이익폭을 넓히기 위해선 FP&A 조직의 역할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볼티모어 대학과 금융자동화기업 데이터레일즈(DataRails)가 83만9880개의 미국기업을 공동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효율적이지 못한 FP&A 업무로 이 업체들이 손해보는 금액은 연간 78억달러(약 10조원)로 추정됐다. 이중 61억달러는 몸값 높은 애널리스트들이 가치 낮은 데이터 분석을 수행하기 때문에, 17억달러는 아마존 같은 혁신이 없어서 새어나가는 돈이다.
데이터레일즈 CEO인 디디 거핑켈(Didi Gurfinkel)은 "FP&A 전문가들은 시나리오 분석, 실시간 데이터 대응 등을 통해 비즈니스 성장을 끌어낼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평했다.
쿠팡은 어떨까. 현재 쿠팡 FP&A를 맡고 있는 인력들을 보면 에릭 주오(Eric Zhuo), 조나단 코아(Jonathan Koa) FP&A 디렉터 등이 눈에 띈다. 에릭 주오 디렉터는 2004년 중국건설은행에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소니에릭슨, 레노버를 거쳤다. 2010년부터 약 6년 동안 중국 베이징 아마존에서 FP&A 시니어 매니저로 일했고 이후 중국 메이카이닷컴으로 이동했다.
2017년 쿠팡으로 적을 옮겨 조달(Procurement)팀을 이끌고 있다. 풀필먼트센터를 지원하기 위한 장비·인력·서비스 등의 전략적 소싱, 풀필먼트센터의 장기적 확장계획을 지원하기 위한 분석·예측 모델 개발 등을 담당한다. 또 조나단 코아 FP&A 디렉터의 경우 GE(제너럴일렉트릭)와 일본 GE 재무 쪽에서 10여년을 근무했다. 그 뒤 도쿄 오요(OYO)에서 FP&A를 맡았고 2021년 2월부터 쿠팡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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