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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갑자기 회사채를 찍는다면

이경주 기자  2023-02-22 07:49:18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리자 시장에선 갖가지 궁금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금성자산을 100조원 넘게 쌓아둔 걸로 유명한 삼성전자인데 왜 자금이 필요할까. 자금이 필요하다해도 회사채 같은 시장성조달이 더 저렴한데 굳이 비싼 이자(4.6%)를 주고 자회사한테 빌렸을까.

우선 삼성전자는 별도법인 기준 현금이 부족한 것이 맞다. 최근 4년간 잉여현금흐름(프리캐시플로우, FCF)이 마이너스였다. FCF는 2018년 약 12조원이었지만 2019년 마이너스(-) 약 7조원, 2020년 -13조원, 2021년 -7.7조원, 2022년 -7.4조원이다.

반도체투자와 배당으로 거액을 쏟다보니 생긴 일이다. FCF는 영업을 통해 창출한 현금(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CAPEX(카펙스)와 배당액을 제한 수치다. FCF가 음수라는 것은 영업으로 번 돈으론 투자·배당 소요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수단을 동원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투자자산을 처분해 부족자금을 충당했다. 지난해를 예로 들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44.7조원에 달했지만 CAPEX로 42.4조원을 지출하고 또 배당으로 9.8조원을 써 FCF가 음수가 됐다. 이에 투자자산을 처분해 14조원을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남은 현금성자산이 3.9조원에 불과했다.

올해도 투자와 배당을 해야 하니 다시 곳간을 채워야 했다. 올 연간배당의 경우 평시보다 크게 줄인 2.4조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반도체 불황에도 감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CAPEX는 전년 수준(42.4조원)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번 조달은 투자와 배당에 대한 의지를 시장에 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회사채 시장을 찾지 않는 것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선 투자은행(IB)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이다. 국내 채권 시장은 감당할 체급이 안 된다. 지난해 연간 일반회사채(SB) 발행액이 37조원 규모였다. 호황기였던 2021년은 52조원이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빌린 20조원 가운데 원화 비중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크게 줄여 잡아 10조원이라고 치자. 호황기를 기준으로도 유동성의 5분의 1을 흡수하겠다는 것이 된다. 단일 건으론 ‘소화 불능’이다. 올 들어 SB 수요예측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린 곳이 포스코로 기관 신청액이 3조9700억원이었다. 이 수치가 맥스라는 평가다.

부차적인 문제도 있다. 그 동안 잠잠하던 삼성전자가 진입하면 다른 기업들이 반발할 수 있다. 그만큼 자신들이 조달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굳이 논란을 자초하며 회사채를 찍어야 할까. 이자비용을 조금 더 내는 게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점진적으로 회사채 시장을 찾아 조달액을 늘려가는 건 긍정적일 수 있다. 국내에 제대로 된 민간기업 AAA급 기준을 세운다는 상징성이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유도해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AAA인 SK텔레콤이나 KT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IB의 솔직한 의견이다. “삼성전자가 갑자기 회사채 시장을 찾는다면 긍정적 효과보다 반감이 더 클 거에요. 10조원이 아니라 2조~3조원만 되도 다른 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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