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의 거금을 차입하면서 시장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115조원이 넘는 현금성자산을 가졌지만 자회사나 해외법인에 분산돼 있고 국내 본사는 9조원 남짓한 수준이 남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그간 호실적을 바탕으로 곳간에 현금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어 재무적 여력이 있었다. 또 삼성전자가 지분 80% 이상을 가진 비상장사인 만큼 주주들의 반발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차입처로 낙점됐다.
◇115조 현금은 대부분 자회사·해외법인 분산
삼성전자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하기로 결정했다. 차입기간은 오는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 이자율은 연 4.6%다. 상환방식은 만기일시 상환이나 만기일 도래 전 차입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조기상환 가능하다는 조건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1년 말 별도재무제표 기준 24조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곳이다. 작년 연간 영업이익이 5조95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곳간의 상당액을 빌려준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투자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끌어온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기준 현금성자산이 115조원에 이른다. 차입금을 뺀 순현금만 100조원 이상인 현금부자다. 다만 이는 자회사와 해외법인에 분산돼 있으며 별도기준으로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9조2600억원으로 10조원에 못 미친다.2020년만 해도 삼성전자 국내 본사가 가진 현금은 30조원이 넘었으나 2021년 특별배당 등으로 20조원가량이 빠져나갔다. 이런 가운데 2030년까지 총 6개 반도체 생산라인(P1~6) 계획을 세운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캠퍼스 3·4공장(P3·P4)을 건설하고 있다. P3는 마무리 작업 중이고 P4는 골조공사를 시작, P5 이후 공장은 부지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P3의 경우 초기 감가상각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물량이 최대로 내야 하는 만큼 공장을 계속 가동시킬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로선 인위적 감산이 어려운 상황이라 차입을 해서라도 국내 반도체 라인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재무여력 충분한 비상장사 '삼성디플'서 급전 끌어와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대규모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있다는 전언이다. 메모리 반도체 실적 급락은 재고축소 의지를 가진 고객들에게 물량을 밀어내다 보니 큰 폭의 가격인하가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올 상반기까지 다운턴이 예상된다. 시장 침체에 따라 올 1분기는 실적 저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와중에 올해도 반도체 부문 투자에 50조원 가량이 쓰여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차입처로 삼성디스플레이를 선택한 이유는 국내 반도체 투자에 상당액을 쓰는 만큼 해외법인보다 국내 자회사에서 빌려오는 게 낫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법인들도 별도의 투자계획에 따라 자금을 활용하는 데다 일부 국가의 경우 외화유출입 규제가 있고 환차손익 문제도 있다.
더구나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4.78%, 삼성SDI가 15.22%를 소유한 비상장법인이다. 20조원 거액을 끌어와도 주주 반발 등의 이슈가 없고 의사결정도 훨씬 수월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그간 호실적을 바탕을 곳간에 현금을 쌓아놓고 있어 재무적 여력이 충분한 상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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