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재계 순위 상위권에 있는 대기업집단의 재무라인은 '순혈'인 경우가 많다. 기타 직군에서는 다른 기업이나 직군에서 커리어를 쌓다 입사한 경력직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지만 재무는 그렇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당 그룹으로 입사해 재무 관련 업무를 통해 쭉 성장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오너와 소통하면서 때로는 최고경영자(CEO)들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도, 그룹 사업의 전반적인 면들을 꿰뚫고 있어야 하기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부 인사'가 중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두산은 다르다. 사원 시절부터 두산에서 성장한 인물들 외 외부에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경력을 쌓은 '경력직'들도 CFO로 선임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과 조덕제 두산밥캣 부사장(사진)이다.
박상현 사장은 금융권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2004년 ㈜두산 전략기획본부 부장으로 경력 입사했다. 이후 2008년 임원으로 승진해 이후부터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재무 총괄을 맡았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두산, 두산밥캣에 이어 현 두산에너빌리티까지 박 사장은 모두 CFO를 맡았다.
현 조덕제 부사장 역시 박상현 사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조 부사장은 피앤지(P&G), 질레트(Gillette) 등에서 재무 경력을 쌓다가 2010년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GFA(Global Financial Analysis) 팀장으로 경력 입사했다.
이후 조 부사장은 두산밥캣으로 이동해 같은 업무를 보다가 2014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에도 두산밥캣에서 CFO 직속에서 재무라인을 컨트롤하는 'Finance Controller' 직책을 맡았다.
박 두산에너빌리티 CFO가 두산밥캣 CFO로 부임했던 2018년에는 유럽·중동·아프리카(EMEA)지역에서 재무 총괄역으로 이동했다가 2020년 다시 두산밥캣으로 돌아왔다. 이후 박상현 사장이 2020년 중순 두산에너빌리티 CFO로 부임하면서 그 자리를 조 부사장이 물려받았다.
두산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쌓은 CFO들도 있다. ㈜두산의 김민철 사장과 두산퓨얼셀의 제후석 부사장, 두산테스나의 김윤건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김민철 사장은 1989년 ㈜두산으로 입사했다. 김윤건 부사장은 1991년 두산식품에 입사했다. 제후석 부사장도 두산그룹에서 27년 이상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들 대신 경력으로 입사한 두 인물이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 CFO를 맡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 두산그룹의 본체이자 미래 에너지 사업의 핵심 수행 주체로 꼽힌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로 현재 두산그룹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뽑아내는 '캐시카우'로 꼽힌다.
박상현 사장과 조덕제 부사장은 최근 몇 년간 두산그룹을 둘러싼 구조조정 작업을 최일선에서 이끈 선봉장들이기도 하다. 박상현 사장은 문제의 진원지였던 두산에너빌리티 CFO로서 채권단 조기졸업이라는 최선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조덕제 부사장 역시 그룹 차원의 자산 재배치 작업 등을 이끌면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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